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새해 초 여러 곳에서 주는 달력을 마다하고 하루하루 떼어내는 일력을 사다가 걸었다. 내심 올해는 日新日新 又日新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떼어내며 새로운 날을 살아보겠다는 각오는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한꺼번에 여섯 장을 떼어냈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일까 달력을 떼어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서였을까. 어느새 달력의 두께는 아주 얇아졌다. 절기상으로도 상강을 향해 달려가니 월동 준비도 해야 하고 금세 새해가 올 것 같다.

올해가 아직도 두어 달이나 남았는데 내가 새해 타령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년이면 나는 육십이 된다. 내가 어떻게 육십이라는 나이를 먹지? 육십이라는 나이는 옆집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있을 나이이지 어떻게 나에게 육십이라는 나이가 오나. 이제 늙어갈 일밖에 없겠다고 인식하는 순간 덜컥 겁이 나고 두렵기도 했다. 나보다 먼저 육십을 맞은 사람들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육십을 맞이하는 게 이렇게 두려운데 사람들은 왜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을까. 나는 그 답을 찾아 나섰다. <논어 위정> 편은 공자가 본인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회고하는 구절이 있다. 공자는 나이 십 오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홀로 설 수 있었으며 사십은 불혹이라 하였고 오십에 지천명하였으며 육십에 이순하였고 칠십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여도 법과 도덕에 저촉됨이 없다고 하였다.

어느 구절보다 육십에 귀가 순해진다는 말의 뜻이 궁금해진다. 논어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송대 주희가 주를 달아놓기를 육십은 마음이 통하여(心通) 무엇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된 것을 아는 때라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결국 마음이란 것은 육십이 되어야 성숙해지고 무르익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과 쉬이 마음이 통하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나 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영복 교수는 오랜 수감생활 동안 본인이 읽어온 동양고전을 정리하여 `강의`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신 교수가 동양고전을 꿰뚫어 읽고 터득한 마음에 관한 구절이다. "마음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음이 좋다는 것은 마음이 착하다는 뜻이다.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관계에 대한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놓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머리로 이해하거나 좌우명으로 걸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있는 그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100세 시대가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중간에 적어도 한번은 은퇴를 해야 한다. 수입은 적어지고 나이는 많아지고 고뇌는 깊어진다. 은퇴하는 시점을 인생의 끝으로 잡을 것인지 다시 시작하는 시작점으로 잡을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고 선택이다.

육십이라는 나이는 그간의 경험과 연륜에 마음마저 통하는 때이니 인생을 다시 한번 힘차게 살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구순의 우리 어머니는 내가 육십만 됐어도 하고 싶은 거 다 해볼 수 있겠다고 지난 시절에 대한 회한이 많으셨다. 구십 세의 노 교수님은 육십오 세에 은퇴한 후 그저 쉬기만 했는데 구십까지 살 줄 알았더라면 나는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내 인생 삼십에 홀로 설 때는 패기 하나로 살아냈다. 육십인 지금은 경험과 연륜과 나와 마음을 나눌 내 편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 전국의 지자체에도 50플러스라는 기관을 두고 인생 이모작을 응원해주고 있다. 내년에도 나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에 과감하게 도전을 해보려 한다. 도전은 꿈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흥분되고 설레는데 실행해 나가면 얼마나 더 가슴 벅찰까 상상해보자. 작은 도전이 큰 변화가 되고 그 변화는 내 운명을 바꿀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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