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하 시인
최길하 시인
(메밀꽃 필 무렵)은 "메밀꽃 플러스"를 품고 있다. 평창은 죽은 이효석이 먹여살린다. 이를 보고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메밀씨를 뿌렸다.

그러나 그 메밀꽃에는 "필 무렵"이 없다. "필 무렵"속에 들어 갈 스토리, 서정이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속에는 떠돌이 늙은 장꾼의 길 위에 인생이 있고, 허생원을 닮은 늙은 나귀가 있고, 바람처럼 지나간 사랑 한토막이 있다. 허생원이나 나귀 같은 생의 계절을 따라가는 밤길이 있다.

일행은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고 냇물을 건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허생원이 동이보고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허생원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어지고 만다. 나귀도 허생원도 물에 빠진 그날 밤 그 길에서 왼손잡이 "동이"가 그가 뿌린 첫사랑의 씨앗임을 어렴풋 알아본다. 은어의 회기랄까? 이제 동이 어머니를 향한 그동안의 그리움이 메밀꽃처럼 밀려온다. 나귀도 허생원도 밤길을 재촉한다. 장꾼일행은 메밀꽃 속에 묻혀 보이지 않고 나귀의 방울소리만 일행이 흘러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구름 속에 달이 숨었듯 홍운탁월법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메밀꽃이 입은 "필 무렵" 때문에 국민정서가 된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이 좋다.

"투전을 하여 사흘 동안 다 털어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다"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문화는 정서다. 정서 속에는 애환이 있어 마음을 흔든다. 메밀꽃은 메밀꽃보다 "필 무렵"이 있기에 더 애잔하다. 최길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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