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규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지역본부장
이여규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지역본부장
대학 동창 A는 한때 잘나가던 금융맨이었다. 입사 동기들 중 가장 일찍 지점장이 돼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빨리 올라간 만큼 빨리 내려와야 했는지 그가 몇 년 전 갑자기 명퇴를 했다. 그 친구가 새로운 일을 찾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우리는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평생 직장 다니면서 매여 살았는데. 나는 퇴직하면 아무 것도 안 할거다`라고 얘기를 하곤 했다. 정년 퇴직이 코 앞에 다가온 지금,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든다.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에게 어떻게 노후준비를 하는지, 노후자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의견을 구하고, 은퇴한 선배에게는 돈만 있으면 되는 건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묻는다. 중고령자가 딸 만한 자격증도 이리저리 검색한다. 불안해서 하는 행동이다.

`나의 노후준비는 과연 탄탄한가?` 국민연금공단 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후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1인 기준 117만 원, 부부 기준 195만 원이고, 적정생활비는 1인 기준 165만 원, 부부기준 268만 원이다. 특별한 질병이 없는 건강한 노년을 가정한 경우이니, 질병이 있다면 이보다 많은 노후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노후생활비는 성별이나 거주 지역별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남성이 여성에 비해 필요 금액이 조금 높았으며, 서울 거주자는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높았다. 패널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5년과 비교해보면, 최소 노후생활비 기준으로 약 80%가 증가한 금액이다. 그만큼 은퇴 예정자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인 국민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액이 93만 원임을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으로 1인 기준의 최소 노후생활비를 상당 부분 충족할 수 있다. 부부가 모두 가입기간이 20년 이상이 된다면 국민연금만으로도 부부의 최소 노후생활비를 충족하게 돼 노후준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00세 시대에 가장 큰 리스크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른다는 점이다. 준비한 노후자금 보다 오래 살게 된다면 노년에 생활고에 시달려 삶의 질이 뚝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금액의 노후자금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60세 이후의 노년이 20-30년 길어지면, 그 오랜 기간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준비한 노후자금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예상했던 거보다 일찍 노후자금이 바닥나서 낭패를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인상하므로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걱정이 없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려 연금 수령액을 높이고, 부부가 모두 국민연금에 가입해 1국민 1연금을 준비하면 길어질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여기에 공단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재무·건강·여가·대인관계 등의 노후준비서비스를 받아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한다면 더욱 보탬이 될 것이다. 요즘은 모바일 앱 `내 곁에 국민연금`을 통해서도 간단히 본인의 노후준비수준을 진단할 수도 있으니 시간 날 때 한 번 접속해 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준비한 노후에 더해 아무 때나 불쑥 불러내 차 한 잔,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의 길어진 노후는 더 이상 리스크가 아니라 축복이 될 것이다. 오늘은 A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이여규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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