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흑인을 차별하는 국가를 위해 올림픽에 나가야 할 이유가 뭔가?" 해리스 교수는 흑인 선수들에게 묻는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의 미국. 본인도 흑인이라 차별을 많이 당했던 해리스 교수는 흑인 선수들에게 말한다. `올림픽, 보이콧하라!`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국가를 대표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이후 그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 보이콧을 치밀하게 기획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사되진 않았지만.

성사되진 않았으나, 해리스의 문제의식에 동의한 선수가 있었다. 육상 200m 대표선수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퍼포먼스를 생각해낸다. `메달 따면 시상대에서 항의 표시를 하자!`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후, `흑인의 힘을 위한 거수 경례(Black Power Salute)`란 퍼포먼스를 했다. 시상대에서 국기 게양 시 검은 장갑을 낀 팔을 올리는 퍼포먼스였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항의다. `스포츠와 정치` 수업 때마다 이 사례를 전 세계 학생들이 배운다.

이러한 항의는 흑인을 차별하는 미국 사회의 죽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게양되는 국기를 향해 고개를 숙인 후 `사망`을 뜻하는 검은색 장갑을 치켜 올렸다. 국가의 거부, 즉 국가에 조의를 표한 것이다. `국가대표`가 `국가`를 인정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이 장면을 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저게 뭐지? 미국의 인종 차별이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항의는 짧고 굵었으나, 후폭풍은 길고 괴로웠다. 미국육상연맹은 두 선수를 귀국시켜 연맹에서 제명, 메달도 박탈했다. 백인들은 입국하는 두 선수에게 토마토를 던져 반겼다. 지금은 두 선수가 미국 체육계의 우상이지만, 당시 그들은 백인들에게 꾸준하고 치밀하게 살해 위협을 당했다. 10년 동안.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과 관련한 사회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보이콧이 아닌, 퍼포먼스로 대응한 결과는 큰 반향으로 이어졌다.

또, 도쿄올림픽 보이콧은 효과가 없다. 여권의 대통령 후보들이 올해 7월 23일 개막할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한다. 올 초엔 정부까지 나서 보이콧을 말했다. 일본의 독도 표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란다. 역사적 기록을 남겨 교훈을 주려면 보이콧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다. 보이콧은 그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보이콧하면 일본이 `아차, 우리가 실수했구나. 독도 표기 잘해야지`라고 나올까?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흑인 선수들이 보이콧을 했다면 백인들이 `아차, 차별이 잘못이었구나! 반성하자` 했을까?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게 더 초현실주의적이다.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열린 인권 세미나.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목소리가 묻혔을지 모를 보이콧 대신, 시끄럽긴 했어도 시상대에서의 퍼포먼스가 더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고 본다." 동의한다. 퍼포먼스엔 스토리가 담겼다. 지금껏 회자되는 이유다. 정치인들은 보이콧 대신 우리 선수들에게 엄포를 놓으시라. `실력 발휘 제대로 하라!` 다른 버전도 있다.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 스포츠와 정치를 동일시하는 위험한 발언이지만, 보이콧말고 선수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려주고 오라는 격려가 정치적 효과면에선 더 나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이번 올림픽에서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했던 세련된 퍼포먼스가 재현될지. 남상우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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