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얼마전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간단히 외식을 하고 대전 시내를 걷다가 갑자기 핸드폰이 없던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은 물론 우리의 대화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 약속에 늦는 아내를 하염없이 한 시간 가량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요즈음 같으면 바로 전화를 걸거나 카톡을 하면 되지만 어디에 있을 지 모를 사람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 수도 없어 계속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엔 사람들끼리 연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삐삐라 불리는 휴대용 연락장치가 나오기 전까지 예를 들어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만큼 사람들은 지금보다 자유로웠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구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은 어쩌면 인간의 정서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발전과 역행하는 것일까?

20세기의 동이 터올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그러한 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찬양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바로 미래주의자들이었다. 오늘날 들어도 팬시한 미래주의(Futurism)라는 말은 그들의 발명품 중 하나인데, 이 요란시끌벅적한 예술사조는 이에 걸맞는 선언문으로부터 시작된다. 1909년 2월 5일 Gazzetta dell`Emilia라는 이탈리아 신문에 처음 발표된 미래주의 선언문에는 당시 처음 등장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자동차에 대한 찬미가 두드러진다. 당시 자동차는 미래의 상징처럼 보였고 그 속도감이 주는 매력은 컸다. 한마디로 기술에 대한 찬양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극단적인 단절을 선동하며 지나간 지식과 철학을 파괴할 것을 주문한다. 오로지 기계문명만이 인간의 구원이 된다는 논리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인간의 기술문명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들은 오히려 이를 찬양하고 인공물이 주는 다이나미즘(dynamism)을 찬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미래주의 운동은 우선 음악에서 새롭고 기발한 작품을 보여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가 있다. 화가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인터나르모리(Intonarumori)라는 실험적인 소음기계를 제작해 소음음악을 선보였다.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전자음악의 조상과도 같은 음악인데, 한마디로 기존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 소리나 기차소리와 같은 기계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음악이 될 수 있다라는 미래주의적 발상이었다. 이러한 루솔로의 소음음악은 오늘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음향적 음악을 100년 이상 앞서간 놀라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음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가능성을 꽤 뚫어본 천재성이 엿보인다.

미술에 있어서는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ni 1882-1916)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미래주의적 역동성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표현했다.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의 연속성`이라는 조각품은 미래주의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시시각각 표현한 것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기계를 찬양하고 그 기계가 주는 운동감에 매료됐던 미래주의자들의 기술에 대한 동경을 짐작하게 한다.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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