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현 충남대학교 과학기술지식연구소
성을현 충남대학교 과학기술지식연구소
대전에는 과학기술분야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정출연)이 특히 많다. 정출연은 운영 재원의 일정 부분을 정부 출연금으로 충당하는 연구기관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출연 25개 중에서 16개가 대전 대덕에 위치해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연구개발특구로 처음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정출연이 많이 입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출연의 기원은 키스트(KIST)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스트는 미국이 한국의 월남전 파병의 대가로 설립해준 한국 최초의 연구개발 전문연구기관이다. 설립 초기 키스트의 가장 중요한 설립목적은 기업의 기술적 애로를 해소하는데 있었다. 당시 기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외부의 힘으로 설립된 키스트는 오늘날 선진과학의 총아로 발전했지만, 사실 그 초기 미션은 산연협력에 있었던 셈이다.

1970년대 초 일본의 츠쿠바 학원도시를 벤치마킹한 대덕연구단지는 입주 연구기관들의 기관 운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출연하되 운영은 독립채산제로 하는 정출연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그리고 입주할 정출연들의 확보는 표준과학연구소(1975) 등을 비롯 그 상당수가 키스트의 하위연구소들의 분리·독립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특이한 사항 중의 하나는 키스트로부터 정출연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키스트의 미션이 산학연협력 중심의 산업미션에서 기초과학미션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키스트가 가졌던 그 산업적 미션은 초기 대덕의 정출연으로 이전되는 듯했으나 사실상 논문이나 특허 중심의 기초과학미션이 자리를 잡고 말았다. 이후 정출연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기초와 응용 및 개발연구를 오가며 그 미션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결과적으로 기초과학 중심의 정출연연구기관 미션의 기조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출연의 미션이 산업적인지 여부는 활발한 산연협력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연구기관이 산업적 미션을 가지게 되면 기본적으로 입사 전 연구자의 마음자세부터 산업연구를 지향하게 되고, 입사 후의 활동도 산업적 활동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극성은 산연협력 활동의 다양한 경험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 경험은 연구자의 산연협력활동에서 생기는 두려움을 제거하며, 결과적으로 산연협력의 효과성도 높이게 된다. 반면, 산업미션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시간적 배분의 문제로 산연협력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족한 산연협력의 경험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을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산연협력 활성화의 중심 키는 정출연에 산업미션을 부여하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와 정출연의 역학관계상 산업미션의 부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 산업적 미션의 부여도 어렵고, 또 산연협력의 경험 축적도 부족한 현 상황 하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중간조직`에 있다. 제3의 민간형 중간조직을 둠으로써 연구자와 기업을 인위적으로 매칭하여 산연협력의 경험을 늘려주고, 연구자와 기업 간의 갭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술사업화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지금도 정출연 내에는 기술이전 기관(TLO)이 있어 산연협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출연이 가지는 경직성으로 인해 적극적인 산연협력의 지원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자체 차원의 제3의 민간형 중간조직의 체계적인 지원과 육성은 대전의 산연협력활성화의 물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4대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산업미션을 가진 프라운호퍼는 스스로 산연협력을 성공적으로 잘 해내고 있지만, 나머지 산업미션을 가지지 않은 막스플랑크, 라이프니찌, 헬름홀츠 연구소들은 스스로 산연협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슈타인바이스와 같은 제3의 민간형 중간조직이 인위적 매칭과 직접적인 기술사업화 지원을 통해 산연협력을 활성화하고 있음은 주목해볼 만하다. 성을현 충남대학교 과학기술지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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