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국내 유일한 철광석 생산업체인 한덕철광산업(주)은 40여 년간 제철의 원료인 철광석을 채굴하여 포스코에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산업의 쌀`로 알려진 철을 생산하는 제철 역량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경제발전을 이끈 중공업·자동차·조선·건설 등 산업은 태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한 이 회사의 철광석 광산 시설에 최근 새로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 연구단이 우주입자연구시설 건설을 위해 광산의 627m 깊이 수갱 하부에서 시작하는 터널(-10도의 사갱)과 지하실험실 공간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길이 1㎞의 터널은 해발 989m의 예미산 정상을 향하고 있어서 터널 끝에 건설되는 지하실험실은 지하 1100m 깊이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에 설치되는 실험실 `예미랩`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 깊이의 지하실험실이 될 것이다.

예미랩은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암흑물질 발견과 중성미자 질량 측정에 도전하고 있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약 27%를 차지하는 물질로 예상되지만 아직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존재다. 지하실험 연구단은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인 윔프(WIMP)를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보고 그 증거를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우주에서 광자(빛) 다음으로 많은 기본입자인 중성미자의 질량도 측정할 계획이다. 유령입자라고도 불리는 중성미자는 질량이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 정확한 수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 IBS 과학자들은 깊이 1100m의 지하에 내려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의 신호를 분석한다. 1100m 두께의 암석이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의 배경잡음을 차단하여 정확한 측정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예미랩에서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의 배경잡음인 우주선을 기존 지하연구실보다 5배 이상 차단할 수 있다. 본격 가동 이후 검출 민감도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100meV를 뛰어넘는 약 20meV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성미자 질량은 너무나 미세해서 민감도를 낮출수록 측정 가능성이 커지며, 암흑물질 역시 측정을 방해하는 잡음이 적을수록 신호의 발견 확률이 높아진다. 예미랩의 연구가 성공하면 우주의 시작과 형성 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즉 이제껏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 과학지식의 새 지평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경제발전 수준과 국제사회에서의 향상된 지위를 반영하여, 우리도 인류의 과학지식 확장에 기여하는 지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미랩은 이러한 우리나라 기초과학 발전의 비전을 실현하는 실험실이다. GDP 대비 R&D 예산 비중이 세계 1-2위인 우리나라에서 우주 연구에 도전하는 대형 기초연구는 첫 시도인 셈이다. 물론 우주의 신비를 발견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류 과학지식의 확장에 기여하고 과학 교과서를 새로 쓰는 의미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대형·장기·집단 기초연구를 지향하는 IBS는 기존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수행하기 어려웠던 연구들을 실행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생명·물질에 대한 새로운 과학지식을 발견하여 국가 위상을 높이는 성과와 감동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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