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이 말한 대로 역사는 실로 정반합의 산물인가? 지난 시간에 말했던 인상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다. 장소는 독일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들 하면 독일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실제 독일 사람들의 성품은 매우 진중하고 이성적이며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가 되기 쉽지 않지만 한번 되면 매우 속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독일의 지하철 승강장엔 게이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마음만 먹으면 무임 승차가 가능한데, 가끔 역무원이 불시에 체크를 한다고 한다. 굳이 게이트에서 요금을 스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요금을 다 지불한다고 한다. 그러한 독일에서 감정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예술 사상이 꽃을 피웠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프랑스는 어떠한가? 이탈리아 정도는 아니지만 감정표현을 서슴지 않는 그들이 아닌가? 프랑스 영화를 보면 뭔가 똘기마저 느껴진다. 패션과 향수의 본고장이며 낭만적 사랑의 메카처럼 느껴지는 파리를 소유한 그들이지만 진작 역사에 길이 남는 수학자 중 프랑스 사람들이 많다. 파스칼(1623-1662), 페르마(1607-1665)가 그렇고 합리주의를 창안한 데카르트(1596-1650)도 프랑스 사람이다. 지난 시간에 말한 것처럼 그런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의 꽃이 피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화가의 주관적인 내면보다 외부의 사물이 주는 화가의 심상(Image)를 그리려고 했다. 어찌 보면 매우 냉철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 냉정해 보이는 독일 사람들은 실상 속에는 광기가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낭만주의를 꽃피우던 괴테의 나라에서 20세기 들어 다시 그 깃발을 높이 드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표현주의(Expressionism)`다. 정답부터 이야기하면 표현주의는 낭만주의 20세기식 이름이다. 더구나 인상주의의 반대적 현상인 것이 농후하다. 외부의 사물이 주는 이미지를 `흡수`하려고 했던 인상주의와 달리 오직 예술가 내면 속의 움틀림을 `분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상주의 작품보다 표현주의 작품에서 자연 왜곡 현상이 더 크게 나타난다. 20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미술에서는 칸딘스키(1886-1944)가 이끌던 청기사(Blue Night)가 대표적인 동인회였고, 음악에서는 쉔베르크(1874-1951)와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표현주의를 적나라하게 대표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1893년에 그려진 뭉크(1863-1944)의 `절규(Skrik)`라는 그림이다. 그림의 배경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인데, `아케베르크`라는 언덕에서 보이는 실제 풍경이다. 그러나 그림은 마치 정신병자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인데 하늘은 온통 핏빛이며,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해골처럼 왜곡돼 있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두 사람은 유령처럼 묘사돼 있다. 다음은 화가 자신의 설명이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 만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이 그림은 화가의 깊은 내면의 고통을 여과없이 표출한 표현주의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며 그림이 더 이상 자연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닌 것을 천명하는 작품이 됐다. 황성곤 배재대 실용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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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에드바르트 뭉크, 1893, 마분지에 유채물감, 템페라, 파스텔, 91×73.5㎝
절규, 에드바르트 뭉크, 1893, 마분지에 유채물감, 템페라, 파스텔, 9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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