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의 해체를 위한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영구정지 이후 4년 만이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원전 해체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 운영에서부터 해체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 처분까지 원자력 전주기가 완성된다.

국내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산증인이 있다. 최초의 원자로이면서, 국가등록문화재 제577호로 지정된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연구로 1호기)`다. 원자력 분야 유일한 문화재로서 올해로 60년이 넘어 이제는 원자력 생애주기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는 연구로 1호기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제3의 불` 원자력이 이런 비약적인 경제 발전과 함께했다. 전후 천연자원이 부족해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절실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는 세계 전력계의 대부 시슬러 박사의 말에 공감해 원자력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국민소득이 80달러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막대한 예산과 전문 인력이 필요한 원자력의 도입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정책의 지원으로 힘겹게 추진할 수 있었다. 특히, 원자로 건설비용인 약 73만 달러 중에서 35만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1959년 착공한 원자로는 원래 5개월 후 완공이 목표였다. 그러나 인력도 기술력도 없었던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더불어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역사의 굴곡을 온전히 버텨내며 2년 8개월 후인 1962년 3월에야 설치 공사가 완료됐다. 이때 원자로 가동을 축하하기 위해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

연구로 1호기는 국가 첨단시설로서 소임을 수행하며 각종 연구 및 인력 양성의 토대가 됐다. 1969년에는 증가하는 연구 수요에 발맞춰 출력을 1.5배 증강한다. 그러나 1972년 연구로 2호기가 건설돼 운전을 시작하면서 연구로 1호기는 훈련 및 실험실습용으로만 사용된다. 이후 1985년 원자력연구원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연구로 부지(현 서울 노원구 공릉동)는 해체 완료 후 반환하는 조건으로 한국전력공사에 매각한다. 결국 대전의 다목적 연구로인 `하나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연구로 2호기와 더불어 1995년에 운전을 정지한다. 이후 연구로 해체계획을 수립하고 신청해 2000년 11월에는 최종 해체계획서를 승인받는다.

당초 연구로 1·2호기 모두 원자로를 철거하고 부지를 반환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연구로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기념관으로 보존하기로 결정된다. 이후 과학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근대 과학문화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 등을 고려, 2013년에 국가문화재로 등록된다. 2015년에는 `광복 70년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연구로 1호기는 60년도 지난 낡은 건물 속에서 켜켜이 쌓인 세월을 흔적을 털어내고 원자로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겨둔 상태다. 향후 외부 건물 철거 후에는 기념관으로 전환해 일반 관람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 이루어진,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오늘날 기술적 발전의 토대가 됐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77호, 연구로 1호기가 앞으로도 과학 한국의 미래 세대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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