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시인

봄볕 내간 / 유준호

봄볕이 부쳐 보낸 기별 속에 숨어온 씨

겨우내 흙을 덮고 몸살을 했다더니

마침내 툭 툭 터져서 새 꽃을 피우더라.

몸 빌어준 알알 씨 윤회하여 태어난 꽃

몇 생을 살아도 꽃과 씨는 못 만나봐

전생이 기억나지 않는 후생은 멋쩍더라.

온 누리에 삼긴 짓을 어찌 다 알랴마는

안 뵈면 없는 거라 함부로 말하지 마

바람은 느낌뿐이지만 산 것들 숨이더라.

자연의 섭리는 신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이 자연 속에는 어찌나 많은지 가늠하기 힘들다.

계절은 거짓이 없어 세차던 겨울도 봄의 발자국 앞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봄은 생명의 움이 되는 씨를 틔운다. 그 씨는 겨우내 흙 속에서 몸살을 하다 봄볕을 받아 툭툭 터져 싹이 올라와 새해에 새로운 꽃을 피운다. 씨가 윤회해 꽃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씨는 꽃을 볼 수가 없다. 꽃이 후생이라면 씨는 전생이다. 이렇게 전·후생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아무리 후생이 기억을 떠올려도 전생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아 멋쩍고 객쩍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온 누리에는 신묘한 생의 윤회가 이뤄지고 있다. 보인다고 다 있는 게 아니고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니 함부로 있다 없다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이 있는 뚜렷한 존재로 만상에 새로운 기운을 넣어주고, 만상에 생의 숨결을 입혀주는 불가시한 자연의 치유사다.

<유준호 시인은>

1943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아호 청사(靑沙). 1964년 전국대학생현상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조문학 3회 천료(1971 이태극 천).

가람문학회 회장과 한국시조문학작가협회 부회장, 중도문인협회 부회장, 대전시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시조협회부이사장 겸 대전지회장, 가람문학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문화상(문학부분)과 세계문학상대상(시조), 대전펜문학상, 한국시조협회 문학상, 포은시조문학상 대상,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바람 한필`, `사월 꽃나무들`, `동지섣달 비질하다`등 8권의 시조집과 평설집 `운율의 미학을 찾아`, 수필집 `설화를 품은 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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