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한 달 전, LA에서는 권위있는 연극상으로 잘 알려진 `오베이션 어워즈`가 있었다. 이번 시상식에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줄리 리(Jully Lee)가 연극 부문 최고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는데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최고 여배우 부문 시상식 때 모든 후보들의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났지만 줄리의 사진이 있어야 할 곳엔 다른 아시아계 배우의 사진이 올라오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은 "절리 리"로 잘못 호명되기까지 했다. 유명 시상식에서 벌어진 이 한바탕 촌극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 시상식의 주최자인 LA 극단 연합(LA Stage Alliance)의 인종차별적인 실수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25개 이상의 LA 지역 극단들이 줄줄이 탈퇴를 선언, 결국 LA 극단 연합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사회의 `비영어권` 이름에 대한 문화적 편견과 차별은 미국 언론의 애틀랜타 총격 사건 보도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숨진 여섯 명의 아시아계 여성은 모두 한국식 혹은 중국식 이름을 지녔는데 미국 언론은 종종 그들의 이름을 잘 못 부르거나 표기하는 실수를 범했다. 타문화권에 대해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약간의 확인 절차만 거쳤어도 피할 수 있는 이런 문제가 너무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아시아 아메리칸 기자 협회는 결국 한국어와 중국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희생자의 이름이 제대로 불려 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전형적인 영어 이름보다 자신의 혈통과 뿌리에 기반을 둔 고유의 이름을 사용하는 미국인들도 많다. 현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그런 경우다.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를 둔 카멀라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의 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녀지만, 해리스 역시 `이국적인` 자신의 이름이 잘 못 불리는 경험을 숱하게 했다. 특히 작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했던 조지아주의 데이비드 퍼듀 공화당 의원은 2017년부터 상원의원으로 같이 일한 해리스의 이름을 일부로 세 번씩이나 틀리게 발음해 그녀의 이름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로 인해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트위터상에서 #MyNameIs 캠페인을 벌여 자신의 `이국적인` 이름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퍼듀의 몰상식함을 비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해리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최소한의 예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이민자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잘 못 불리어 생기는 불편함을 피하고자 고유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전형적인 영어 이름으로 개명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국적인` 이름이라 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화적인 오만함과 무례함, 그리고 게으름을 사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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