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제93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배우 윤여정이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히 진행된 이번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유쾌하면서도 겸손한 수상 소감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중 많은 서양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기 일쑤지만 오늘밤은 모두 용서하겠다는 유머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함께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 주었다.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한 달 전, LA에서는 권위있는 연극상으로 잘 알려진 `오베이션 어워즈`가 있었다. 이번 시상식에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줄리 리(Jully Lee)가 연극 부문 최고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는데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최고 여배우 부문 시상식 때 모든 후보들의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났지만 줄리의 사진이 있어야 할 곳엔 다른 아시아계 배우의 사진이 올라오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은 "절리 리"로 잘못 호명되기까지 했다. 유명 시상식에서 벌어진 이 한바탕 촌극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 시상식의 주최자인 LA 극단 연합(LA Stage Alliance)의 인종차별적인 실수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25개 이상의 LA 지역 극단들이 줄줄이 탈퇴를 선언, 결국 LA 극단 연합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사회의 `비영어권` 이름에 대한 문화적 편견과 차별은 미국 언론의 애틀랜타 총격 사건 보도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숨진 여섯 명의 아시아계 여성은 모두 한국식 혹은 중국식 이름을 지녔는데 미국 언론은 종종 그들의 이름을 잘 못 부르거나 표기하는 실수를 범했다. 타문화권에 대해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약간의 확인 절차만 거쳤어도 피할 수 있는 이런 문제가 너무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아시아 아메리칸 기자 협회는 결국 한국어와 중국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희생자의 이름이 제대로 불려 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전형적인 영어 이름보다 자신의 혈통과 뿌리에 기반을 둔 고유의 이름을 사용하는 미국인들도 많다. 현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그런 경우다.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를 둔 카멀라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의 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녀지만, 해리스 역시 `이국적인` 자신의 이름이 잘 못 불리는 경험을 숱하게 했다. 특히 작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했던 조지아주의 데이비드 퍼듀 공화당 의원은 2017년부터 상원의원으로 같이 일한 해리스의 이름을 일부로 세 번씩이나 틀리게 발음해 그녀의 이름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로 인해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트위터상에서 #MyNameIs 캠페인을 벌여 자신의 `이국적인` 이름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퍼듀의 몰상식함을 비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해리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최소한의 예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이민자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잘 못 불리어 생기는 불편함을 피하고자 고유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전형적인 영어 이름으로 개명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국적인` 이름이라 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화적인 오만함과 무례함, 그리고 게으름을 사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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