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1980년 컬러TV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시범적으로 소수의 컬러 프로그램을 송출해 평소 관심 없던 토론 프로그램 등을 찾아보곤 했다. 우연히 접한 일본산 컬러 TV와 비디오로 안방에서 영화를 보며 일제의 우월함을 실감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40년이 지난 지금,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고품질로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 더구나 디스플레이의 대부분이 국내업체들의 제품이다. 가히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신소재 개발이다.

우리 정부도 일찍부터 소재의 중요성을 인식해 `2001년 제1차 부품·소재 발전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부품·소재 특별법을 제정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한 바 있다. 이후 부품분야의 국산화는 상당부분 해결했으나, 소재분야의 대일무역역조는 첨단 IT의 발전과 함께 오히려 심화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품·소재라는 명칭을 소재·부품으로 변경하고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러한 이슈는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결국 2001부터 2019년까지 소재부품의 전체 수입액 중 대일 수입비중이 21.7%에 달하게 됐다.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 핵심소재의 수출규제를 단행해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이에 정부는 8월 초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유관부처 장관들을 중심으로 `소부장 경쟁력위원회`를 출범했으며 12월 소부장 특별조치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소부장 자립화를 위한 정책적 기반을 확충했다. 그 결과, 연간 2000억 원 규모였던 소부장 분야 정부 R&D 연구비는 2조 원 규모로 증액돼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또한 2020년 7월 정부는 소부장 2.0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 기존의 100대 핵심품목을 넘어 미래소재분야 포함 총 338+α개(첨단형 158개, 범용형 180개)의 품목으로 확대해 2022년까지 5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발표했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이미 몇몇 품목들은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도 차세대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의 네이처지 표지논문 게재, 수소차 연료전지의 핵심소재인 불소계 이오노머소재(PFSA) 기술이전 등의 성과를 창출했다. 특히 불소 소재 분야는 기초원료부터 단량체, 응용소재 등 전 공정의 국산화를 위해 기업과 협력 중이다.

하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인 소재분야의 특성상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량적인 성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부 R&D 예산에 대해 연구자로서 부담감이 적지 않다. 자칫 투자규모 확대에 대한 성과논리에 매몰돼 결국 단기 투자로 끝난다면 10년 전 역사를 반복하고 이제 막 새싹을 틔운 소부장 자립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될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재분야는 보다 긴 호흡의 장기적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대학 및 출연(연)과 기업은 원천기술 확보 및 사업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국내 소재산업은 45%의 생산액과 39%의 부가가치를 97% 이상의 중소기업에서 담당하고 있다.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체수가 전체의 79.9%(`18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어 개별 기업의 R&D 역량만으로는 원천기술 확보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 주도의 장기적 투자, 출연연과 기업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소재분야 R&D 경쟁력은 세계 4위 수준으로 도약했다. 이제는 완성품뿐 아니라 기초 원천소재분야에서도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충만해 있다. 40년 전 컬러TV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처럼, 새로운 소재 혁명이 우리를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로 안내할 것이다. 이 미래에 대한민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냐 여전히 해외 소재 기술에 의존할 것이냐를,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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