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로해 준 마라톤 영웅 이봉주
이제는 국민들이 위로해 줄 때
난치병 빨리 이겨내고 다시 '무대'로

김정규 천안아산취재본부장
김정규 천안아산취재본부장
피땀 흘려 국민에 희망을 주는 스포츠 스타들이 있다.

이들은 스포츠로서의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팬들의 아프고 힘든 가슴을 어루만져준다.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IMF시절 맨발 투혼으로 위기의 공을 건져 올린 박세리가 그랬고, 비인기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소위 `OO키즈`라는 꿈나무들은 이들의 발자취를 좇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지금의 중장년층, 노년층에게는 박치기왕 故 김일 옹이 삶의 고단함을 잊게 했고, 역사를 거슬러 일제강점기 시대 故 손기정 옹이 마라톤으로 대한민국의 희망을 쏘아 올렸다. `아시아의 물개` 故 조오련,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 엄홍길 등 다른 적지 않은 스포츠영웅들도 우리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지난 주말 한 스포츠 스타가 대전의 야구장에 나타났다. 구부정한 걸음으로 한화 마스코트의 부축을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시구 무대에서 있는 힘껏 공을 뿌리는 그의 모습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인생의 반환점을 막 돌았다고 밝혔던 그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였다.

51. 아직 나이에 맞지 않는 `굽은 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1년 여 만에 다시 작은 활동을 시작했다.

스포츠에서 예능으로 옮겨 활약하던 이봉주 선수는 최근 한 TV프로그램에서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불치병 투병 사실을 전했다. 이 병은 뇌신경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난치병이다. 편히 눕지도 못하고, 걷는 것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자신의 별명을 따 만든 봉사단체 `봉주르 wonju`와 함께 봉사활동을 벌였다.

이 봉사 단체는 2020년 초 코로나19가 시작한 2020년 초부터 현재까지 원주 지역의 복지시설이나 학교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인다. 취약계층에 도시락도 전하고,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 자리를 `아픈` 이봉주가 함께 한 것이다.

이봉주 선수는 사연이 많다.

4~5㎜차이가 나는 짝발, 쉽게 피곤함과 통증을 느끼는 평발로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마라톤은 이봉주 선수의 꿈도 아니었다.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돈이 적게 드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12㎞나 되는 학교를 가난 대신 훈련이란 `미명`을 붙여 달리기로 통학했다.

큰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오히려 조명받기 시작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1위와 3초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분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고 되레 금메달을 딴 선수와 함께 세레모니를 펼치며 기쁨을 전파했다.

은·동메달을 따면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던 당시 분위기에 선수와 국민, 언론의 시각을 한 번에 바꾸는 기념비적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그의 인생사에는 재미와 감동도 있다.

2001년 당시 광주의 한 초등학교 4학년 `이봉주 어린이`는 마라토너 이봉주가 시드니올림픽에서 24등에 그치자 친구들에게 `24등`이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이군은 "형이 24등을 해서 제가 `24등`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며 "저를 위해서라도 꼭 1등을 해달라"고 이 선수 홈페이지 와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봉주 선수는 `이봉주 어린이`에게 답했다. 소속 팀 티셔츠와 친필 사인, 그리고 "이봉주 어린이의 별명을 `1등`으로 바꾸어 드릴게요."라는 짤막한 편지를 이군의 학교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선수는 4개월 뒤인 200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약속을 지켰다.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 되며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40세의 나이에 41번 풀코스 완주를 하면서 은퇴한 이봉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픈 몸으로 희망을 전하는 `스포츠영웅`. 이제는 우리가 그를 위로해줄 차례다.

김정규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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