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16세기 영국은 주요 화폐로 금화, 은화 등을 사용했다. 그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액면가와 실질가치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 주화에 몰래 불순물을 섞어 만들어 유통했다. 그렇게 되면 화폐의 기본 원칙인 액면가와 실질가치가 같아야 하나, 불순물이 들어간 화폐는 액면가보다 실질가치가 떨어지게 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일반인들도 주화에 불순물이 들어가 순도가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됐고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기존에 순도가 높은 주화는 집에 모셔두고 순도가 떨어지는 주화만 사용하게 됐다. 그러면서 시중에는 순도가 떨어지는 주화, 악화만 유통되게 됐다. 결론적으로 순도가 떨어지는 악화가 기존의 양화를 몰아내는 것이다.

일반 상품에서 가격이 같고 품질이 다른 경우 품질이 좋은 것은 소비되며,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은 경쟁에서 소멸 제거된다. 그러나 화폐는 2종류 이상의 소재의 가치를 달리하는 화폐가 동일한 액면가로 통용될 경우 열등한 소재의 화폐만 통용되며 우량 소재의 화폐는 용해·저장·수출 등으로 유통과정에서 소멸된다는 법칙이다.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레샴의 법칙이다.

그레샴의 법칙은 원래 경제용어로 경제 분야에서 많이 사용됐으나 요즘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착한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돼 버리는 세상이 돼 버린 듯하다.

최근 연일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면 농업을 평생 업으로 알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 농업인들에게 큰 허탈감을 전해주고 있다.

가짜 농업인. 단어도 생소하다. 농사를 짓는데 진짜가 어디 있고 가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언제부터 농사를 짓는 농지가 투기의 장으로 변질돼 버렸는지.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쉽게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농지법상 경작 계획서만 제출하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서류를 제출한 이후에는 경작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멀리 살면서 농지만 구입하고 동네 사람에게 임차를 해주지만 임대차 계약서를 써주지 않는다. 이유는 나중에 토지를 매매할 때 농업인에게 주어지는 세제 혜택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유로 실제 경작자는 농업인이라면 등록해야 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니 남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실질적인 농업인들은 농업인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 피해를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은 농업인이 아닌 사람이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를 위해 농업인과 농업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번 사태처럼 도시인들이 농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법과 이론뿐만 아닌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농지원부나 농업경영체 등록 제도를 좀 더 현실적으로 개편하여 실제 농사를 짓는 농업인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1세기 식량안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에 가짜 농업인을 철저히 가려내 농지를 진짜 농업인들에게 돌려주어 식량안보를 지켜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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