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사실 지난 칼럼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저 하지 못했다. 물론 횡단보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침에 건너는 것과 저녁에 건너는 것이 사뭇 다르다. 간밤에 충분한 휴식으로 충전 게이지가 가득 차 있는 경우, 우리 어머니 말씀대로 싸게싸게 걷는다. 가방 가득 읽어야 할 책을 넣고 다닌다. 지금 읽는 책 한 권과 곧바로 읽을 책. 텍스트 강박이 있어 읽지 않으면 불안하다. 쓰려면 읽기를 한 장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하여튼 가방이 무겁다는 것이고 아침에는 그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다. 필자는 도자기를 만들며 글쓰기 하는 도자디자이너이다. 새벽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글쓰기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 도자기를 만든다. 오후 5시쯤 되면 생체 시계가 곧바로 신호를 보낸다. 눈이 침침해지고 집중력이 급격히 줄어든다. 나이 50을 넘어서면서 생체 시계가 그렇게 바뀌었다. 일 그만하라는 신호다. 짐 챙겨 작업실을 나선다.

아침에 가벼웠던 가방이 저녁나절 돌아오는 길에는 무거워진다. 가방을 어깨를 바꿔가며 메고, 싸게싸게 걷던 걸음이 느릿느릿해진다. 게다가 마스크 안에서 숨소리까지 거칠게 신음한다.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바로 옆과 맞은편에 나란히 서 있다. 동병상련이려나. "오늘도 수고했어요. 조심해서 건너시고 편안히 쉬세요. 내일도 힘내세요."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 건네고 싶어진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항상 걱정되는 게 있다. 중간쯤 건넜을 때 꽤 멀리에서 뛰는 사람들 이보인다. 횡단보도 초록색 신호가 초 단위로 점멸하는데 5초쯤 남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젊은 남녀, 교복입은 학생, 마음 급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지인 아무개 씨는 "나는 절대로 횡단보도에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여요. 다음 신호 기다리는 1, 2분 별거 아니에요. 왜 저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네."

3초를 알리는 신호등 불빛에도 횡단보도에 뛰어드는 행인을 보며 마치 불나방 같다며 혀를 끌끌 차는 지인이 가끔 미워진다. 필자는 그 행인이 무사히 길을 건너기를 바랄 뿐이다. 행여나 성급한 운전자가 보지 못해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뒤돌아본다. 다행이다. 무사히 건넜다.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