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필자는 고향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스의 오랜 팬입니다. 제 소년 시절 대구는 70년대 고교 야구 전성기를 연 경북고와 대구상고로 대표되는 구도(球都)로 인정받을 만큼 야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다니던 야구명문 경상중학교의 전국대회 우승을 번번이 가로막던 한밭중학교를 통해 충청지역도 야구를 잘하는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우리 프로리그의 신흥주자로 충청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이글스가 창단돼 제 초중등학교 동창인 김성갑 선수 등 라이온스 멤버들이 상당수 옮겨가 맹활약하면서 개인적으로 나름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제 세종에서 국제관계대사로 일을 하면서 완연한 이글스 팬이 됐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창궐만큼이나 이글스 팬들에게 어려운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그럴수록 제 주위의 이글스 팬들이 야구를 향한, 이글스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기록으로 보면 2007년 이후 단 한 차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데서 보듯이 이글스의 암흑기는 이미 상당히 연장되어 온 가운데, 지난해는 연패 기록으로 그 바닥을 친 시즌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제 리빌딩 전문 외국인 감독이 지도하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한 이글스는 이미 연습·시범 경기에서 연승하는 모습에서 보여주듯 확실히 이번 시즌에는 선풍을 일으켜 팬들과 지역민들의 자랑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충청지역은 역대 우리 야구를 대표하는 박찬호, 이상군, 송진우, 구대성 선수와 같은 강견의 에이스를 배출한 야구명문입니다. 이글스의 팬들은 최근 팀 성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도 경기장을 매우고 선수들을 향한 일관된 격려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마치 FC 바르셀로나가 경기의 승패를 넘어 `축구클럽 그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처럼 이글스의 야구는 우리 충청민들의 유대감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지역문화적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외교부 근무 시절 첫 재외공관 근무지로 캐나다 몬트리올 주재 영사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즈(현 워싱턴 내셔널즈)의 경기를 보러갔다가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속구와 절묘한 서클체인지업에 감탄하며 응원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몬트리올 엑스포즈는 아이스하키의 도시 몬트리올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결국 연고지를 옮게 되었습니다. 이와 비교해 이글스의 충청지역에 천착한 정도는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의 터줏대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 못지않을 정도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습니다. 충청분들이 양반문화 때문에 표현에 신중해서 그렇지 야구사랑은 견줄 데 없다고 봅니다.

지역분권과 균형성장을 상징하는 세종시에서 근무하면서 충청권 광역생활경제권 메가시티 추진 등 충청권 지역연대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논의되는 것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충청지역민들을 하나의 유대감으로 묶을 수 있는 이글스의 야구는 이런 측면에서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서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미래 충청권 단합의 정서적 밑거름이 된다고 믿습니다.

제가 과문하지만 미래 이글스의 홈구장이 좀 더 세종이나 청주에 가깝게 온다면 대전시민 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민들이 더욱 이글스의 경기를 즐길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주 소재 제2홈구장도 있고 요즘 세종지역은 리틀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최고의 중산층 도시 세종이 곧 이글스 팬덤의 한 축으로 성장할 것이라 충청권 흥행은 소위 `엘-롯-기`를 능가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 시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전설적인 다저스 감독 토미 라소다가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시즌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글스의 야구는 올 시즌부터 양키즈의 거포 레지 젝슨의 별명처럼 `10월의 사나이`로 거듭날 것이고, 저는 이글스 홈경기장에 제 고향팀 라이온스가 오면 1루석에 앉아야 하나 방문팀 응원석인 3루석으로 가야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자리가 어디이든 올 시즌 이글스의 선전과 보살 팬들의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겠습니다.

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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