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 달 전 대전 원도심 중앙부 랜드마크인 옛 충남도청사 담장과 향나무 등에 대한 무단 훼손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사건의 개요를 되돌아보면 대전시에서 `지역거점별 소통협력 공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도청사 내 근대 건물인 우체국, 무기고 등을 `북카페` 등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공사를 하면서 같은 근대 시설물인 담장을 철거하고, 담장에 식재된 최대 약 80년 수령의 향나무들을 거의 모두 훼손·폐기한 것이다. 문제는 충남도청사가 현재 문화체육부와 충남도 재산임에도 대전시가 임의로 공사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법적·행정적 후속조처가 긴급히 이뤄졌지만 그럼에도 훼손된 향나무들이 온전히 복구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정식 명칭이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大田 忠淸南道廳 舊 本館)`인 옛 충남도청사는 일제강점기 권위적 성격의 청사건물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많은 논의를 거쳐 근대건축물로서 상징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경내에는 `충남대학교 옛터` 표지석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도청사 향나무들은 그 자체로는 문화재가 아니지만 도청사 경관 형성의 주요한 요소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도시에 있어서 보존되어야 할 경관은 건축물 자체의 가치와 함께 그에 깃들여진 서사(敍事), 그리고 부속 시설물들과 조경수, 더 나아가 배경이 될 수 있는 부지 바깥의 경관 일부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시각에 따라서 `왜 그런 것까지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이론이 제기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것, 편한 것, 큰 것으로 채워지는 도시 개조`가 우리 도시의 미래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는 이제 젊은이들이 애호하는 서울의 대표적 힙플레이스(Hip Place)로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에는 크고 작은 붉은 벽돌 건물들이 빚어내는 빈티지 감성의 경관이 나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수동2가 옛 공장이나 창고 등 중에도 붉은 벽돌 건물들이 꽤 있지만 서울숲 북쪽 성수동1가는 붉은 벽돌 다가구 주택군을 이루고 있다. 199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진 이들 주택들이 최근 성수동2가의 변모와 함께 카페나 레스토랑, 스튜디오 등으로 개조되면서 독특한 정취와 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성동구에서 2018년부터 실시한 `성수동1가 일대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사업`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사업은 이 지역 내 붉은 벽돌 건물을 리모델링 혹은 신축할 경우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붉은 벽돌 건축물에 담긴 건축적·역사적 배경을 알리는 QR코드를 개발하는 등 관광자원화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사업의 착안점이 된 이 지역의 기존 붉은 벽돌 건물들은 고급 외장 마감재로서 붉은 벽돌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시절에 저렴하고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었던 구조재 겸 외장재 중 하나가 붉은 벽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낡고 헐었다고 부정하기 보다는 나름의 서사를 `빈티지` 감성의 서정으로 연결해 되살려내 성수동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좋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옛 충남도청사는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인 일제강점기 관청 건물로, 조경수로 심어진 향나무들 또한 우리 고유의 조경수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시설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관계기관들과 협의는 긴밀했어야 하고 나아가 시민과 전문가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청취해 반영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시 건축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항상 시간적 요인을 앞세운다. 그러나 절차와 시간을 축약한 결정은 항상 후유증을 낳았다. 비록 당대에는 모르는 후유증일지라도. 도시건축에서 오래된 것들에 대한 예의는 그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시간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욱(남서울대 교수·㈔대한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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