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미국기업 투자에도 작품상 배제
美사회 뿌리깊은 아시아계 혐오 드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도 머나먼 얘기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최근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한국 언론은 `미나리`의 행보를 `기생충`과 비교하며 다음 달 열리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계 영화가 또 한 번 파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며 기대감에 들떠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뿌리 깊은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미나리`의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 결과를 가져왔다면 어떨까?

`미나리`는 미국인 감독이, 미국 현지에서, 미국 제작사의 투자를 받아 만든 100%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규정으로 인해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됐고 그러면서 주요 부문인 감독상과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됐다. 이를 두고 세계 영화 팬들과 미국 언론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30% 밖에 안 되는 영어 대사 비중에도 불구하고 2010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걸 지적하며 할리우드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비난했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이 중국계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페어웰`도 같은 이유로 작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랐다.

`미나리`와 `페어웰`이 분명 미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이유는 미국 사회가 여전히 아시아계 사람들을 "영원한 이방인(perpetual foreigner)"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어를 못하거나 혹은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오랜 고정관념이 그들을 온전한 미국인으로 인식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편견은 할리우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오랫동안 재현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배척을 더욱 정당화시켰다. 그런 이유로 `미나리`에서 이민 1세대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은 뉴욕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을 위해 엉성하게 영어를 써야 하는 것에 대해 남다른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황화론"(yellow peril) 또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차별받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황화론은 더럽고 야만적인 황색인종 즉, 아시아인들이 서양을 정복하고 서양 문명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트럼프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 혹은 "쿵 플루 (쿵후와 플루의 합성어)"라 불렀던 것, 또 영국 록밴드 Coldplay의 "Fix You"를 최근 커버한 BTS의 무대를 두고 독일의 한 라디오 진행자가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며 그들을 코로나바이러스에 빗댄 것 모두 황화론의 연장선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시작과 함께 미국에선 아시아계 사람을 상대로 한 혐오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즉각 멈추라는 행정지시를 내렸다. 그럼에도 미국내 반아시아인 정서는 여전히 거세다.

그 혐오 정서의 중심엔 아시아계 사람들은 진정한 미국인이 될 수 없다거나 이들을 동양에서 온 불온한 외부 침입자라는 식의 편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종종 듣는 "go back to your country"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것이나 코로나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모두,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직도 이룰 수 없는 판타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혜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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