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졸업식장에서 밀가루를 마구 뿌리며 축하하는 장면을 경험한 세대도 있고 영화나 뉴스에서 본 세대도 있을 것이다. 이 비슷한 장면은 6·25 전쟁 직후의 기록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언뜻 색깔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후 세대가 뒤집어쓴 것은 밀가루가 아닌 디디티(DDT,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였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이, 벼룩, 빈대 같은 해충들을 말끔히 정리해주었던 것이 바로 DDT였다.

DDT는 스위스의 과학자인 파울 뮐러(1899-1965년)에 의해 식물이나 인체에 해가 적고, 안정적이며 즉시 효과를 나타내는 접촉성 살충제로 개발됐다.

세계 2차 대전 중 말라리아나 발진티푸스로 고통받는 병사가 전장에서 부상이나 사망하는 수와 맞먹는 시기여서, 매개 곤충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살충제는 전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큰 걱정거리를 해결해줬다. 이 공로로 뮬러 박사는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DDT는 전 세계적으로 만능 살충제로써 사용됐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살충제로 엄청난 양이 사용되고 있던 DDT의 거침없는 질주에 급제동이 걸리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레이철 카슨(1907-1964년)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그 발목을 잡은 것이다.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했고, 살충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새들의 알껍데기가 얇아져서 제대로 부화할 수 없고, 해충뿐만 아니라 대부분 곤충이 사라지게 돼 먹이사슬이 파괴되는 결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침묵의 봄을 맞게 된다는 경고였다.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 인식이 거의 없던 시기에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났고 해충 박멸에 집중됐던 시선을 환경과 생태계로 돌릴 수 있었다. 대형 화학 회사들은 비난과 협박으로 레이철 카슨에게 압력을 행사했지만, 여론과 시민들은 그녀의 편에 섰고 끝까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주장을 펼쳤다.

`침묵의 봄` 출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환경운동이 급속하게 퍼지게 됐다. 1969년에 미국에서 국가 차원의 환경 정책이 수립됐고 그 이듬해에는 미국 환경청(US 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설립돼 환경 정책과 규제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그리고 1972년 DDT에 대해 사용금지 명령을 내렸다.

DDT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살충력이 있지만 자연 분해가 매우 늦게 일어나 오랜 시간 동안 환경 속에 잔류하며 생물들을 오염시켜 먹이사슬을 통해 상위그룹 생물에게 축적됐다. 또한 인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돼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마치 인류를 해충으로부터 구원할 것 같은 기대 속에 사용됐지만, 결국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퇴출당했다.

2017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충제 달걀 파동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에 오염된 달걀이 유통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의 달걀 출하 농장에 대해 전수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두 농장에서 DDT가 검출됐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에 DDT의 판매와 사용이 금지됐다. 이 농장들에서 검출된 DDT가 수십 년 전에 사용된 것의 잔류물인지 불법 유통으로 최근까지 사용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기억에서조차 사라졌던 DDT가 우리 먹거리로 자주 등장하는 달걀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을 경고한 지 60여 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들이 아직 남아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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