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조센징`은 `조선인(朝鮮人)`의 일본식 한자어 발음이다. 문자 그대로 원래 의미하는 바는 `조선 사람`이다. 근대 이전에는 일본에 비해 한반도 문화 수준이 더 높았기에 조선인이라는 표현 속에 부정적 의미가 담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조센징`이라는 어휘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특히 이 표현이 교묘한 것은 `조선(朝鮮)`이라는 고유명사에 사람 `인(人)`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보통 명사를 합쳐 놓았다는 점이다. 은연 중 `조선`이라는 고유명사에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하여, 우리 민족이 가진 고유한 것들에 대하여 열등감과 자괴감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제의 그런 의도는 일부 성공한 듯 보인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불만에 찬 젊은이들이 흔히 내뱉는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 속에 일제가 우리 뇌리 깊숙이 새겨 놓은 잔재가 아직 남아 있음이 느껴진다. 심히 우려스럽다.

얼마 전 우연히 한 인터넷 게시물에서 `한남`이라는 어구를 보았다. `한국 남자`의 줄임 말로서 여성 혐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 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남성을 일컫는 용어라 한다. 일부 여권 운동가들에 의해 비하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남`에 담긴 부정적 이미지는 `조센징` 보다 비극적이다. 기본적으로는 편협한 생각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보이는 일부 남성들 탓이다. 하지만 조작된 용어에 의해 한국 남성의 이미지가 통으로 매도되는 것은 곤란하다. 단지 성(姓)을 달리할 뿐 이 땅에 함께 사는 이들에 의해 명백한 비하 의도가 드러나는 용어가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한국`이라는 어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한남`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남`이라는 말을 주류 언론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예 우리 사회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한편, 수년 전 등장하여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국가 상징을 조합하여 만든 신작(新作)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태극기 부대`이다. 굳이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태극기 부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아실 것이다.

`태극기`는 누가 뭐래도 공식적인 국가 상징물이다. 국제 회의석상에서 우리 측 대표들이 자리한 테이블 위에 태극기가 놓인다.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 대항전에 앞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태극기`에 대한 예우가 진행되고,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따면 `태극기`가 게시된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가슴 벅찬 감동을 함께 느낀다.

그런데, `태극기 부대`가 가지는 용어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아니, 정치적 견해에 따라 어느 정도 비하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태극기`가,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상징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수일 전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이 있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운집해 있는 동영상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든 동양계 남성 한 명이 포착됐다. 그 영상을 보고 필자는, `재미 교포 중에 트럼프 지지자가 있구나. 저런 자리에서 굳이 태극기를 함께 들고 한국계임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영상을 보고, 누군가는 `태극기 부대`가 떠올랐다고 한다. `태극기`가 있는 모습을 보고 `태극기 부대`가 먼저 연상 된다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그런 트윗 내용을 기사화하여 싣는 언론도 문제다. `태극기`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이미지 보다 `태극기 부대`가 먼저 연상되는 사람이 더 이상은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언론이 앞장서 주어야 한다. `조센징` 같이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서는 곤란하니까.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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