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기억은 무엇에 근거할까? 인간은 경험을 감각적 또는 지각적 형태로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은 끊임없이 쌓여 그 대상을 특별하게도 만든다.

어릴 때 대전엑스포로 소풍을 왔었다. 기념품점에서 꿈돌이 저금통과 한빛탑 목걸이 중 고민하다 목걸이를 사서 집에 왔고, 그 후 TV에서 꿈돌이 만화를 보며 저금통을 살 걸 후회했다. 내게 대전은 그런 곳이었다. 특별한 기억은 없던 곳. 그리고 성인이 돼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대전에 다시 왔다.

현재 만년동에 살고 있다. 근무지이기도 하고 결혼 후 이사 왔다. 집과 직장이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이동반경은 좁아졌다. 코로나19로 여행과 만남까지 적어져 일상은 지루해졌다. 그래서 출근길을 이용해 봤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 여행하듯 걸으니 그 짧은 시간도 흥미로웠다. 기후와 사람 등 마주치는 대상과 환경은 시시각각 달랐다. 자연의 조화부터 개인의 감정까지 젖어드는 상념 또한 폭넓다. 명상 같은 시간을 통해 내게 집중할 수도 있다. 그 시간들은 오롯이 나만의 기억이 된다. 그 중심인 만년동, 대전은 이제 특별하다.

일본의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는 시간을 구체화했다. 그의 작업은 감정을 배제하고 시간에 집중한다. 대표작 `오늘` 연작은 단색 바탕에 날짜를 그린 것으로 1966년부터 50년간 이어졌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작업은 캔버스에 바탕색을 5번 칠하고 숫자를 7번 칠한 후 뒷면에 그날 신문을 오려 붙였는데, 하루 최대 3개까지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자정까지 완성치 못하면 가차 없이 폐기했다.

또 다른 대표작 `전보` 연작은 1968년부터 기상시간, 다닌 길 등 하루를 작품으로 치환했다. 그는 매일 눈을 뜬 시각을 고무도장으로 찍고 `I AM STILL ALIVE`라 적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평범한 일상이 존재의 가치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비가역적인 시간과 닮아있다.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 후회해도 잡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새로운 기회가 있어 우린 살아갈 수 있다. 그 시간들은 기억으로 남아 삶에 오롯이 존재한다. 지난해 불안이 가득했지만, 어느 때보다 일상이 감사했다. 2021년을 알리는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새 해가 또 다른 일 년 후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매일 만들어 갈 일이다.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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