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요즘 시내를 운전하다 보면 계속 변하는 제한속도 때문에 여간 헛갈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분석에 따르면 차량 속도가 시속 60㎞인 경우에 보행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은 92.6%이지만 시속 30㎞일 때는 15.4%까지 낮아진다고 한다. 그러니 제한속도 하향은 보다 안전한 교통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타당한 조치다.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은 학부모들이 보다 안심할 수 있도록 그 제한속도를 현격히 낮췄다. 당초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사용하지만, 속도를 제한해 우리 모두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불편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제한속도를 낮춰야 안심할 수 있을까? 물론 도로에 차가 전무하다면 가장 안전하면서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의 조치를 취하면 우리 삶의 만족도는 어떻게 될까? 안심할 수는 있지만 그 외의 다른 삶의 만족도는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안전과 편의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면 안전과 편의를 계량해서 적정한 수준을 선택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안전을 확률로 계산하고, 그 결과를 숫자로 제시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안전의 기준은 객관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안심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모든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안심에 대한 기준은 개인의 타고난 기질과 살아온 환경, 경험 등에 의해 결정된다. 필자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아버지와 아들도 같은 공포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인 영향인 듯하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비행기 탈 일이 없지만, 업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항공기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참으로 고역이었다.

작은 난류라도 만나게 되면 비행 시간 내내 불안해서 편하게 있을 수가 없다. 이미 내 몸과 정신은 불안 상태의 극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분들도 필자의 이러한 상태를 알고 뭘 그렇게 걱정하냐고 핀잔 아닌 걱정을 해주시지만 나 스스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내 몸이 공중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걱정을 한 몸에 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매번 비행기를 이용한다. 비행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안전하다는 전문가를 신뢰하기에 이 공포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설을 세운 후에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 추론을 통해 숫자로 안전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그 숫자만으로 내재된 의미와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숫자를 교묘히 왜곡하기 쉬운 측면도 있다. 최근 원자력계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분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원자력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안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분들은 안심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숫자로 안전을 강조해도 그것을 듣는 사람은 완전히 믿고 안심하기 어렵다. 안심은 그 대상을 명확히 이해했을 때만 가능하다. 또는 그것을 설명하는 이를 완전히 신뢰할 때 가능하다. 이해의 바탕에는 상호 신뢰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비행기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비행기가 안전하다고 하는 전문가를 완전히 신뢰할 경우에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과 같다.

원자력계 또한 일반국민에게 원자력에너지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시키거나 스스로의 객관적인 신뢰를 쌓아 일반 국민이 원자력계 전문가를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축년 새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대전 시민과 상생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시민들께 원자력에너지의 원리를 알려드리는 프로그램과 함께 연구현장을 공개하고 각종 안전 정보를 다양한 채널로 공개하고 있다. 또 안전관리시스템을 개선하고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며 스스로의 신뢰를 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대전 시민 여러분과 나아가 국민 여러분이 안심할 수 있는 길이 되길 기원한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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