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노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장
강노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장
코로나가 일상이 되기 전인 작년에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사추세스 공과대학(MIT)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MIT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연구자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슬론 경영대학원 건물을 지나가게 됐다. 슬론 경영대학원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전설적인 경영인인 알프레드 슬론이 1914년에 설립했다. 이곳은 수리와 계량적 접근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학풍으로 혁신, 창업분석, 정보기술 등에서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꼽힌다.

알프레드 슬론에게는 많은 일화가 있으나 그중 필자가 자주 소개하는 일화는 그 당시 GM의 회의 문화이다. 슬론은 어떤 안건이 회의에 올라왔을 때 모든 참석자가 찬성하면 그 안건을 보류시켰다고 한다. 회의에서 결정을 요청하는 어떤 안건이 잘 만들어진 것이라면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득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의견이 없는 안건은 안건이 잘못됐거나 구성원들에게 의견 수렴이나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의 회의 문화는 어떨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괴짜 천재로 대변되는 과학자의 이미지이다. 그 대표적인 이미지가 흩날리는 머리와 160의 아이큐를 가진 천재로 알려진 아인슈타인이다. 이런 천재들은 주변 동료 과학자들과 회의도 하지 않고 혼자 지하실에서 연구해 대단한 결과를 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이다. 하지만 천재들의 논문을 집대성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천재는 1%의 영감, 70%의 땀,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으로 만들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며,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는 주변 동료 과학자들과 회의를 통한 토론이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은 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실험의 구체적 결과를 주고받음으로써 목표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과학자들의 연구 회의에서 서로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는 진행된 결과에 대한 엉뚱한 질문 또는 반대 제안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영 관련 연구자들은 회의 시 내가 어떤 발언을 해도 비웃음이나 질책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의 형성이라고 한다. 연구팀 내에 깊은 신뢰가 있는 조직은 회의 시 어떤 발언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해외에 파견돼 공동연구를 진행해본 동료과학자로부터 이런 좋은 과학 회의 문화의 예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회의는 수학, 통계학, 물리학, 전기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연구팀의 초창기 회의 시에는 과제 목표인 물리학 관련 내용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까지도 타 분야 전공자들이 발표자에게 거침없이 질문할 뿐만이 아니라 엉뚱한 시각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했고, 관련 전공자들은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답변을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고 한다. 동료 과학자는 이렇게 비효율적인 회의가 어디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타 전공 연구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의 연구 아이디어를 제안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우수한 결과를 더 신속히 달성했다고 말해줬다.

이제 올해 쥐의 해도 거의 다 지나가고 새해가 가까워져 온다. 내년 2021년 신축년은 신성한 기운을 지녔다는 흰 소의 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내년 계획을 이미 세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년에는 소처럼 열심히 일할 뿐만이 아니라, 연구 회의 문화 또한 개선함으로써 더 우수한 결과를 계획대로 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강노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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