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단장
진승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단장
우리 국민 누구나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올 초 불청객처럼 찾아온 전염병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해를 넘겨서도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 하니, 공직자로서 무척이나 착잡한 심경이다. 새로운 한 해의 희망을 그려야 할 때에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웃들,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방역에 힘쓰고 있는 국민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면서 2020년 마지막 원고를 시작해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 각 국은 사회 전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새 기준, 뉴 노멀(New normal)을 찾고 있다. 비대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 일로에 있고, 그린 기술과 디지털 역량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발전모델이었던 규모의 경제, 대량생산과 집적화의 신화에 균열이 가고 미니멀리즘, 소량생산과 분산화, 효용성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 분산의 효율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으로서 민간영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명저 [제3의 물결]에서 `분산된 생산방식`, `적절한 규모`, `재생 가능한 에너지`, `탈(脫)도시화`, `생산 겸 소비의 등장` 등을 미래사회에서 마주해야 할 특징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모든 사회에는 중앙 집중적인 측면과 지방 분산적인 측면, 양자가 동시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데 제2의 물결은 전자에만 치중해서 후자를 거의 무시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은 무려 40년이 지난 지금, 팬데믹의 위기와 4차산업혁명의 호기를 동시에 마주한 작금의 우리 사회에 `균형발전`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듯하다.

사실 균형발전은 오래된 헌법적 가치다.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은 제헌 이래 줄곧 우리 헌법에 아로새겨 내려왔다. 2003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본격적으로 지역 격차 해소와 균형적인 국토 개발을 추진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에 10개 혁신도시가 건설되었고, 행정수도로 설계된 세종특별자치시는 이제 인구 30만을 넘는 자족도시로 성장했다. 혁신도시와 세종시의 건설은 약 8년여 동안 자본과 인적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 시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로의 비생산적 집적보다는 지역으로의 생산적 분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하에, 균형발전의 가치가 국정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역균형 뉴딜, 대전·충남 혁신도시, 도심융합특구 등이 비근한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서비스가 집중된 수도권의 철옹성은 아직도 공고하다. 경로의존성과 록인(lock-in) 효과에 갇힌 지역 기업,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경쟁력을 잃은 지역 대학은 고사위기에 직면해있다. 이대로 간다면 지방소멸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종착역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수도권과 지방의 고착화된 구조에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과감한 결단 없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형 경제로의 대전환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모두를 위한 포용국가, 균형 잡힌 세상을 위해 소수 절대적 강자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다수 상대적 약자들은 뼈를 깎는 혁신을 결행해야 한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구(聖句)는 우리 모두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한다.

절절한 호소다. 이제는 지역이 대한민국 발전의 당당한 주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서울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의 대상으로만 치부되던 지역의 이미지는 벗어 던지자. 신축년(辛丑年) 새해에는 지역의 기업, 대학, 금융, 산업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자긍심으로,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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