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기습적으로 징계요청과 직무정지 처분을 명령했다. 그러자 전국 59개 검찰청의 모든 평검사와 검사장, 고검장들이 "부당하고 위법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란(檢亂)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법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헌법과 법치를 훼손한 것에 대해 검찰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체적으로 저항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치가 검찰을 내려친 `추미애의 난`(秋亂)은 법원과 검찰 감찰위원회에서 제압됐다. 법원은 윤 총장 직무 정지 명령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몰각하는 것"이라면서 윤 총장 복귀 결정을 내렸다. 감찰위는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해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사태가 이쯤 되면 추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문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징계위원회를 강행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법과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의 간결하고 명쾌하며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는 설득의 요체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집단 반발하는 데 "모든 공직자는 집단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검사와의 담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울림이 생기는 법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설득의 적이고, 불통보다 더 나쁘다. 문 대통령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평가 조작, 윤석열 직무 배제 등 현 정부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침묵을 지켜왔다. 근본 이유는 자기부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문 대통령은 과거 "검찰 독립이 중요하고 검찰 독립에는 검찰총장 임기보장이 결정적이다"고 했다. 따라서, 윤 총장 해임은 문 대통령이 공언했던 검찰권 독립 및 검찰 개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여하튼 대통령이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훼손시키고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위기』라는 책을 쓴 크리스 윌리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조지 W.부시 대통령까지 16명의 대통령의 통찰력과 결단력을 분석했다. 핵심은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추 장관의 일탈과 독선은 결국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놓고 있다. 민주화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3년6개월이 경과하면 예외 없이 위기를 맞고 레임덕에 빠졌다. 실패한 대통령의 공통점은 위기인데도 위기인지 모르거나, 위기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는 유아적인 생각과 "자신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다. 현 정권은 경기 침체,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의 난 등으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도는 작년 조국 사태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여권의 유력 대권후보들의 지지도는 링에도 오르지 않은 윤석열 총장에게 역전되기도 했다. 심지어 유권자 절반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 지지 의사가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추미애 블랙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국민 10명 중 6명(59.3%)은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금 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국민들의 이런 요구를 관철시키는 책임과 용기다. 우리는 평소 대통령제를 `대통령 중심제`라고 부른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비극은 대통령이 중심에만 있고 침묵하면서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대통령 책임제`로 전환해야 한다. 설득과 용기는 위기 극복의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지만, 불통과 침묵은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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