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직업능력개발원장
양종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직업능력개발원장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명함을 보더니 `장애우를 위한 좋은 일을 하는구나`라고 했다. 나는 "친구야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이 맞는 말이야"라고 답했다. 친구는 장애우가 더 부드럽고 친근한 표현인 것 같아서 사용했다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일상에서 장애인을 대신해 장애우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인터넷 포털에서 장애우를 포함하는 뉴스를 검색해봤다. 청각장애우들 그림으로 말하다, 도서관에 장애우 사업장 신규 조성, 장애우 가정에 생필품 전달 등 놀랄 만큼 많다. 장애우란 단어를 사용한 언론기사가 평균적으로 한 달에 수십 건이 넘는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기자들이 쓰고 교정까지 보는 언론 기사가 이 정도라면 우리 일상에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다. 장애우는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1980년대 후반, 장애인 단체에서 쓰기 시작했다. 벗 우(友)자로 장애인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친근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봉사단체, 언론 등에서 사용하며 확산됐다.

그러나 장애우 표현은 첫째, 나(1인칭)를 표현 할 수가 없는 용어다. 사회집단과 계층을 표현 하는 개념 또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을 포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교수입니다, 당신은 교수입니까, 그는 교수입니다 등이 같은 말이다.

그런데 장애우를 사용하면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말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고 말하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즉, 장애우란 말은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표현이다.

둘째, 장애우의 우(友)는 벗 우자로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의미다. 우리 문화에서 친구라면 동년배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말하며 누구에게나 사용하기는 한계가 있다. 10대 소년이 장애를 가진 70대 할아버지를 소개하면서 장애를 가진 친구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봐라.

셋째, 장애우라는 단어 자체가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표현으로 은연중에 장애가 불쌍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불편한 대상이라는 사고가 포함됐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장애우로 불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도 계속해서 장애우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장애인들은 자신을 장애우라 불러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판단해 바꿔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신체·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하는 옳은 표현은 장애인이다.

용어의 변천을 살펴보면 1970년대까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었으나 장애에 대한 집단적 호칭은 불구자(不具者)였다. 몸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글로 쓸 수 없는 여러 가지 비하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후 유엔은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정하고, 각 나라는 자국 실정에 맞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책을 전개하도록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이 해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했고 이때 명칭을 `장애자`로 규정했다. 이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장해자(障害者)`를 한국식으로 표기해 쓴 것이다.

이후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놈 자(者)에 대한 거부감으로 1987년 법 명칭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면서 `장애인`으로 바꿔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한 두 해가 아닌 서른 세 해나 지났음에도 다른 명칭들을 사용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장애인이 차별 없이 살기 위해서는 제도나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용어 사용부터 실천해보자. 양종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직업능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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