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라온 대표)
윤석주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라온 대표)
며칠 전 벌초를 다녀왔다. 삐죽삐죽 자라있는 산소의 잔디와 무성한 주변 잡초는 연중 행사로 치러지는 벌초작업으로 깨끗이 정돈됐다. 요즘 많은 이들이 산소를 정리한 후 가족 납골당으로 조성해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뿐 아니라 평시에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추모의 공간으로 관리하고 있다. 말끔히 정리된 봉분을 보면 깎아 놓은 알밤처럼 이쁘고 정갈한 것이 이엉으로 갓 지붕 수리를 마친 초가지붕 같다. 지붕의 사전적 의미는 비, 햇빛 등을 막기 위해 집의 위쪽을 덮은 부분으로 정의된다. 지붕의 종류는 마감 재료에 따라 초가, 기와, 함석(패널) 지붕 등으로 구분되고 형태에 따라 모임, 박공, 팔작, 맞배, 우진각, 눈썹, 평(슬라브) 지붕 등으로 불린다. 지붕의 종류는 여러가지 있지만 주로 접하는 지붕은 그리 많지는 않다. 현대 건축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규모 건축물에 적용되는 재료를 보면 철, 콘크리트, 유리가 다수를 이룬다. 건축물의 디자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재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근래에 자재의 선정에 있어서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시간 흐름에 따라 외부에 노출되는 부분의 부식과 재료의 뒤틀림으로 유지보수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도심지에 설치된 주차전용 건축물의 보수공사비 검토를 의뢰한 소유(관리)자와 함께 현장조사를 다녀왔다. 10년이 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최대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지붕을 슬라브로 구성하고 방수마감했다. 현장 점검으로 확인되는 사항을 보면 방수층 이탈, 누수에 따른 내화용 뿜칠 탈락 및 주요 구조재(철골) 부식, 탈락된 재료에 의한 차량 훼손 및 이용자의 안전사고 발생 그리고 누수에 의한 소방·전기 설비 작동 중단 등이다. 왜 지붕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지만 답은 간단했다. 지붕을 설치할 경우 인접필지의 일조권 및 조망권에 따른 민원 그리고 건축물 높이와 관련된 법규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지붕은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나 공사비 및 활용성을 검토하면 슬라브 지붕으로 시공되니 아이러니하다. 평지붕의 용도는 다양하다. 한때 도심지 옥상에서는 들마루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분위기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하늘에서 바라본 수돗물 저장용 물탱크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개발시대 대한민국의 한 면으로 접하게 했으며 시골에서는 빨래나 농수산물 건조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따른 정책변화로 태양 집열판 설치공간으로 활용성을 바꾸고 있다. 그렇지만 집열판 구조물 설치에 따른 하중 증가 및 방수 및 마감재의 손상을 보완하는 공사방법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 누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니 좀 더 세심한 시공이 필요하다.

대규모 공장이나 축사의 지붕에 설치되는 집열판(발전소)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붕 위에 설치하면 발전 생산되는 전기 단가는 지면 대비 1.5배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다수의 건물 소유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많은 건축물은 노후 건축물로 분류되고 또한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지붕 누수에 따른 보수공사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건축된 지 30-40년 된 건축물의 옥상 누수를 보완하기 위해 경량 자재를 사용한 비가림 시설을 하려해도 건축법 등에 따른 인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 구조적 안전도 중요하지만 앞서 언급한 노후화에 따른 누수로 전기·소방 설비에 관련된 시설의 오작동 및 안전사고 발생도 고려해야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처럼 곡선미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지붕도 있지만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설치될 수 있는 평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 건축물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 시공 후 유지관리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노후한 건축물 전체는 아니라도 최소한 지붕의 성형을 허(許)해 주면 안 될까. 건축물 자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윤석주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라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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