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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슈퍼전파자

2020-08-20기사 편집 2020-08-20 07: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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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예훈 소설가
우리 사회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과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두 번의 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슈퍼전파자라는 낯선 명칭이 새롭게 등장했다. 자료에 의하면 다른 확진자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사람에게 감염병을 전파 시킨 이를 일컫는 말이다. 내가 검색한 인터넷의 백과사전에는 그 외의 몇 가지 의학적인 관련 항목이 기록돼 있지만, 언론에서 그 용어를 사용할 때는 한결같이 많은 감염자를 양산함으로써 감염병 예방 정책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전염병 역사에 최초의 슈퍼전파자는 메리 맬런이라는 미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요리사였는데 1900년부터 1907년까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장티푸스를 옮겨 무려 53명이 감염됐으며 그중 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가 옮겨가는 곳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의학계의 주목을 받게 됐고, 조사 결과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녀는 장티푸스 마녀라는 낙인이 찍히고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그 후 노스 브라더 섬에 무기한 격리돼 69세까지 살다가 정작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슈퍼전파자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전이었다.

2003년 2월 중국에서 사스가 퍼지던 시기에 의사였던 리우지안룽은 사스 감염자를 진료한 후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갔다. 자신이 사스에 걸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한 호텔에 묵었고, 같은 층의 투숙객 17명에게 전염시키면서 사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해서 의사 리우지안룽은 슈퍼스프레더 1호 혹은 최초의 슈퍼전파자로 감염병 역사에 기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5명의 슈퍼전파자가 186명 중 82.3%인 153명을 전파시켰다고 한다. 최초 감염자인 1번 환자가 28명, 14번 환자 85명, 15번 환자 6명, 16번 환자 23명, 76번 환자 11명 등 그들은 이렇게 숫자로 기록에 남은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 사태에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그런 형태로 기억된 이들이 있다. 대구·경북 사태의 시작점이 된 31번 확진자,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숨김으로써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2차 확산에 불을 지핀 인천 102번 확진자, 뒤늦은 대전 전파의 진원지였던 다단계 업체의 구로구 43번 확진자와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특히 인천 102번 확진자는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밝히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예방수칙 위반의 예시로서 수없이 거론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TV 뉴스나 SNS에 그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의 실수보다도 겁먹은 어린 청년의 모습이 먼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시기가 지난 후 그는 과연 다시 사회로 돌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24살의 그 젊은이는 이제 막 서툴게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이다.

대전에서 방문판매 사업장에 갔던 한 확진자의 이동 경로에는 종일 통증 치료 병원과 약국, 물리치료사 등을 찾아다닌 고통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네 삶의 그늘을 보여주고 있다.

석 달 넘게 집안에 갇혀 지냈던 일도, 단 한 번의 일상적인 거짓말이 범죄가 되는 규정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을 거부당하는 일도, 투명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밥을 먹는 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이렇게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는 각자의 개인차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밧줄에 매달려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중이거나, 같은 배를 타고 거친 물살을 건너는 중일 것이다. 한두 사람의 섣부른 행동으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만, 전체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동행중 일원을 벼랑에 밀어 넣는 일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루빨리 이 시기가 지나고 그 청년이 실수의 대가를 온전히 치른 후, 좀 더 성장한 사람이 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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