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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나를 찾아가는 길

2020-08-07기사 편집 2020-08-07 07: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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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 첫 소리는 '응애'이다. 첫 몸짓은 주먹 쥔 손을 흔들며 두 발로 허공을 걷는 것이다. 옹알이를 하고 눈으로 웃고 손과 발로 수화를 하며 온 몸으로 말하는 언어를 알아듣는 어머니가 있어서 위대한 탄생이다. 우리는 이 신비로운 탄생의 기적으로 이 땅을 걷고 있다.

불끈 쥔 주먹을 내보이는 연꽃 봉오리를 보라. 꽃이 피기 전 연꽃봉오리를 보면 홍련(紅蓮)인지 백련(白蓮)인지 알 수 없다. 꽃봉오리 속에는 색깔이 없다. 색깔이 있다면 하얀 어둠이 있을 뿐이다. 연꽃잎이 햇살에 비추이고 바람이 살랑거려야 붉은 빛의 꽃잎을 피우고 소박한 하얀 연꽃잎을 피운다. 무궁화도 장미도 꽃봉오리 속에는 색이 없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스스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 최초의 어머니가 있었고 태양과 바람이 있다. 생명을 감싸고 있는 세상이 안아주고 있기에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의 고리를 이어간다. 나 밖에 있는 존재들이 나를 사랑으로 받아주고 있어 내가 존재한다. 우리는 '나' 밖에 있는 모든 존재를 '너'라고 한다. '너'가 있으므로 '나'가 있는 것이다.

'너'는 사람만이 아니다. '나' 밖에 있는 풀, 나무, 꽃, 하늘, 강, 해와 달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너'다.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은 '너'를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행위가 표현이다. 너를 향한 사랑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삶이다. 숲 속에 들어 흥얼거리고 아름다운 꽃과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는 행위가 표현이다. '나' 밖에 있는 유무형의 존재들이 이제 더 이상 '너'가 아닌 '나'다.

우리는 그동안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한 가지 일로 봉사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두 가지를 할 수 있으면 좋고 세 가지 네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은가? 현재는 다기능자가 융합적인 사고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기 표현력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나 밖에 있는 나를 만날 때 그냥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노래로, 그림으로, 시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자기표현은 한 가지의 전문성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의 즐거움으로 나를 찾아 가는 순례자의 길이다.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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