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 제헌절 경축사에서 개헌 필요성 언급
역대 번번이 무산…20대 국회, 대통령 개헌안 폐기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21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전기가 마련될지 관심이 쏠린다.

박 의장은 이날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민을 지키고 미래를 열기 위해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한 때"라며 개헌을 공식 제안했다. 박 의장은 "앞으로 있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며 "코로나 위기를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밝혔다. 그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고,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권적 기본권을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 헌법"이라며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개헌론자인 정세균 국무총리도 페이스북 글에서 "촛불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게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라며 개헌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입법부 수장과 국무총리가 나란히 개헌 카드를 꺼내들며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에 주의가 환기되는 분위기다. 다만 권력구조를 포함하는 개헌 논의의 민감성과 역대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됐던 그간의 경험을 고려할 때 차기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트기는 현실적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선 촛불정국을 거친 20대 국회가 개헌을 논의할 최적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게 사실이다. 헌정사상 초유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국정농단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대통령제에 있다는 문제 의식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후 촛불 정국에서 치러진 대선 과정에서 여야 대선주자는 일제히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회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헌법개정특위를 가동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여야는 결국 권력 분산 방법과 개헌 시기를 놓고 이견만 노출한 채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연임제를 주장했고,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대폭 약화한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국회 주도 개헌 논의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지키는 차원에서 2018년 3월 직접 개헌안을 발의했다.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당시 여야의 쳇바퀴 도는 공방에 드루킹 사태까지 겹치며 6월 개헌을 위해 필요한 국민투표법 개정은 데드라인을 넘겼고, 개헌안 처리는 끝내 좌절됐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발의 시점으로부터 60일이 지난 2018년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졌으나,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가 안 돼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이후 개헌 동력은 크게 떨어졌고, 지난 3월 여야 의원 148명은 국민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안`을 제출했다. 역대 국회의 개헌 노력이 실패를 거듭한 가운데 개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는 취지였지만 이마저도 투표 불성립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울=이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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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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