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옥 큐레이터
고경옥 큐레이터
최근 미술계가 시끄럽다. 미술계에서 꽤 유망한 컬렉티브 일원의 성희롱 사건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건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여준 작업은 `좋은 삶`을 지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간에 보여준 작업이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민에 대한 문제를 시각화하는 것이었고, 또 진정성 있는 문제의식을 통해 다양한 미술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과 관련된 기관의 후속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최근 몇 년간 미술계뿐만 아니라, 공연, 영화, 문학까지 문화예술계와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성범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그간 미술계 내부에서 성과 관련된 사건(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에 대해 `예술가의 기행` 혹은 `예술가의 자유로운 삶`으로 미화되곤 했다. 일부 성적 방종에 가까운 일에 대해서도 예술가라면 모름지기 그럴 수 있다며,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사건도 예술의 이름으로 낭만화되거나 허용되는 이중적인 시각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사건이 공론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폐쇄적 인맥과 남성 중심의 구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지속적인 미투운동의 성과는 고무적이다.

한편 `진보`의 의미와 다면성에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이번 사건처럼 어떠한 한 분야에서 진보적인 사람이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예로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의 사람이 젠더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인권이나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

인간은 여러 특성과 다양한 사고체계를 지녔다. 한 사람이 지닌 그 무수한 결을 한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느 한 면이 보여주는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지레 판단하거나 짐작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해보지만, 이번 사건이 주는 실망감에 마음이 씁쓸하다. 그리고 이 무력감은 꽤 오래갈 것 같다. 그렇지만 미투운동은 계속 돼야 한다. 고경옥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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