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대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중량이 400-500톤을 넘는 대형여객기가 이륙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심지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항공기 개발자의 눈에도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항공기의 이륙과 착륙은 가장 위험도가 높은 순간이기도 하다.

항공기의 개발에서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안전이다. 날개가 없는 인간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갖게 된 순간부터 항공기의 안전 확보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어왔다. 그럼 실제로 항공기는 얼마나 안전할까? 불과 며칠 전 파키스탄 여객기의 추락사고 처럼 항공기 사고는 많은 사상자를 내는 경우가 많고, 승객입장에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대부분이라 항공기 안전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을 갖거나 심리적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항공기의 사고 확률은 매우 낮다. 심지어 번개를 맞을 확률보다 훨씬 낮으며, 오히려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할 위험이 100배나 크다고도 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연례보고에 의하면, 2018년도에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4억명이 약 4600만회 항공기를 이용하였는데,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대형 제트여객기의 경우는 매우 안전하여 100만회 비행에 0.19회 사고가 발생하였다. 즉 540만회 비행에 한번 정도 사고가 발생한 확률로 약 1만 5000년 동안 매일 비행기를 타야 한번 사고가 날 정도인 것이다. 또한 항공기가 사고로 추락한 경우에도 무려 승객의 95.7%가 생존했다는 통계도 있다.

항공기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강우 낙뢰·안개·우박·돌풍·결빙·난기류 등의 악기상 조건, 조류 충돌, 조종사의 숙련도, 정비 및 관제의 완결성, 항공기 및 부품의 신뢰도, 테러 등 매우 많으며 인적요인이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항공기 개발에서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까다로운 규정에 따라 수많은 시험평가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인공 번개를 만들어 번개에 맞아도 안전한지 확인하는 시험, 조류 충돌 시험, 폭우 조건에서의 엔진 성능시험, 구조 안전성 시험, 그리고 통상 수년간 계속 수행되기도 하는 기체의 피로시험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까다로운 인증 기준은 그간 수많은 항공기의 사고를 통해서 얻은 기술적 교훈과 위험도가 매우 높은 비행시험을 마다하지 않은 시험조종사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을 통해서 구축되어 현재의 항공기의 성능과 안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초로 무동력 글라이더 비행 성공으로 비행기의 실용화를 연 오토 릴리엔탈이 자신의 글라이더로 활공 도중 추락하여 사망하는 마지막 순간에 "작은 희생들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매년 1월에 추모일(Day of Remembrance)행사를 통해 아폴로 1호 및 우주왕복선 사고와 항공기 개발 중 항공우주의 새 지평을 개척하기 위해 순직한 시험조종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고 있다.

항공기 개발 역사가 오래지 않은 우리도 용기있는 시험조종사들과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하였던 소형항공기의 시험비행 중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고 황명신교수, 고 은희봉교수의 헌신과 희생은 더욱 안전한 항공기 개발절차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KT-1 초등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헬기 등 국내 개발된 항공기들의 개발 성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시험을 수행하신 많은 분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영웅들에 대한 인식이 좀 부족하고 인색한 것 같다. 개발과정에서 간혹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혹시 연구비를 잘못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비리는 없었는지 하는 수많은 의혹의 눈초리가 꽂히고, 감사를 통해 잘못을 찾는데 치중하다 보니, 잊혀지고 싶은 치부의 역사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풍토가 개선되어 국가의 자존심을 빛내준 숨은 영웅들의 헌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항공우주기술의 더 큰 진보와 우주탐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많은 영웅들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대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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