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성 한서대 교수
최일성 한서대 교수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선거 관련 방송이나 언론뿐만 아니라, 거리에 내걸린 홍보물이나 교차로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유세가 이를 말해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해 총선은 예년만큼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으나 대선, 총선, 지선 등 대한민국 국민들은 평균 2년을 주기로 민주주의의 실체를 뜨겁게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국민이 실제로 통치에 참여한다는 국민주권의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 선거와 투표가 민주주의의 꽃이자 결정체라는 주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선거와 투표에 대한 독려만으로는 오늘날 활력을 상실한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대중을 정치참여로 이끄는 힘은 갈등에 있으며, 갈등의 유형과 성격이 대중의 정치참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처해있는 현실이나 그들이 경험하는 갈등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단지 숫자 속에 나열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는 단순한 과정으로 축소되어버리고 만다.

대중이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과 숫자화 된 인물들 사이에서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낮은 투표율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한다.

그리고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에 흔히 그 탓을 돌리곤 한다.

그러나 4.19, 5.18, 6월 항쟁, 촛불 항쟁 등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누구의 손을 거쳐 이만큼 성장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테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 정치과정에서 관찰되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디어나 방송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인까지도 놀랄 만큼 대중의 갈등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대중이 처한 현실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면 대중은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유지해야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렵고, 따라서 선거와 투표에 참여해야 할 이유를 확신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갈등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가 정치과정에 부재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대중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주권은 선거와 투표에 대한 독려만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갈등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 구체화되고 해결될 수 있을 때, 혹은 적어도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갈등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에 정치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며,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이 관리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선거철마다 인물경쟁이 아니라 정책경쟁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언론 역시 출마한 인물의 신변잡기보다는 그가 제시한 정책을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

관리된 갈등은 대중을 통합시킬 수 있지만 관리되지 않은 갈등은 대중을 분열시키고 힘들게 한다.

선거와 투표에 참여하는 대중의 수가 늘어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결국 대중의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한국정치가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책선거가 한국 민주주의의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최일성 한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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