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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사회적 거리두기'로 배우는 사회란 무엇인가?

2020-04-14기사 편집 2020-04-14 07: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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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는 풀고 퍼즐은 맞춰보자④

첨부사진1최길하 시인
"사회적"이란 떼 지어 산다는 의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사회적'과 '거리두기'는 의미가 충돌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사회와 거리두기"로 해야 어법에 맞는다. 흔히 잘 못 쓰는 말 중에 '사과 한다'를 '유감'이라고 한다. 일본식 어법이다. 사과 한다면서 '내가 뭘 잘못 했는데...'하는 것이다.

좀스럽게 문법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왜 삼라만상은 '사회적'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모든 생명들은 끼리끼리 모여 살까? 시냇물의 버들치부터 고래 떼까지, 참새부터 독수리까지, 산짐승 들짐승으로부터 개미 벌 모든 미물들까지, 냉이나 개망초에서 소나무 참나무 식물들까지, 세상은 온통 같은 종끼리 무리지어 산다.

물질의 근원인 원자 분자 세포들도 다 떼로 달라붙은 적분의 집합체다. 물질의 기초인 원자도 홀로 존재하면 몹시 들뜨고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2개 이상 붙어 안정적으로 존재한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된다. 무리는 점점 더 큰 조직사회를 이루며 우주율이 된다. 이 율동이 규칙과 질서가 되고 춤과 노래가 된다. 리듬이 생겨 섹션이 되고, 결이 앉아 디자인이 된다. 도대체 왜 종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갈까?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의 전일적인 생명체기 때문이다. 빅뱅이 증명하고 있다. 생물만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도 미적분 산화 환원을 계속 하는 성주괴멸의 생명체와 같다. 초침 분침 시침 하루 한 달 일 년 세월 영원이 다 살아있는 호흡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리듬과 파동이 된다.

리듬과 파동은 미시세계인 원자 속 전자의 정체성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같은 전자의 세계다. 전자가 주파수대역이란 파동고속도로를 만들어 빛과 같은 빠르기로 정보를 실어나르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전자는 삼라만상이며 동시에 길이다. 전자는 사회적이며 현대문명의 핵심이며 생명의 파노라마를 펼치고 삶을 구성한다.

인체를 비롯한 유기물도 세포가 모여 오장육부 기관과 피부 뼈대를 만든다. 모든 개체는 더 나가 집단을 이뤄 더 큰 호흡을 하며 더욱 큰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모은다. 궁극적으로 사회는 서로서로 먹을거리를 만든다. 펄벅의 대지처럼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먹을 것이 부족해 질 줄 알았는데 먹을 것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사회는 생과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개체는 저마다 고유의 음색을 지닌 악기이며 하모니를 이룬다. 하모니도 아름다운 사회란 의미다. 벚나무가 수천만 꽃송이를 피워 하나의 꽃나무가 되듯 우주는 한 송이의 꽃 화엄이다.

'코로나19' 이 놈의 변종 바이러스도 자기들의 새로운 신천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파하기 좋은 인간을 택하고 속도와 영역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인류역사가 몇 백 만년인데 고작 두세 달 만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게 사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들은 사회를 이루며 지지고 볶고 싸우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었다.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면을 만드는 원자 분자 세포들의 집합, 벌레 풀꽃 동물들의 무리지어 살아가는 모습은 물결이고 바람이다. 사회는 생과 삶의 섹션이었다. 사회라는 미분과 적분의 코드를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뼈저리게 가르쳐주고 있다. 코로나19는 지구의 위도를 출렁 흔들고 2020년이라는 경도의 시계를 세워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 견고한 인간사회를 해체하고 있다니!.

최길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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