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2001년 9월 11일, 뉴욕 상징인 세계무역센터가 이슬람 무장 세력의 자살 테러에 의해 무너졌다. 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역사상 최악의 테러였다. 충격과 비탄에 빠진 뉴욕 시민들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8일 후, 9월 19일 데일리 뉴스 일간지에 1장의 포스터가 같이 배포되었다. `I ♥ NY More Than Ever`라는 문구로 만들어진 포스터였다. 뉴욕 상징 로고인 `I ♥ NY`의 하트 모양에 상처가 그려져 있었는데 포스터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하려는 뜻은 `어느 때보다 더 상처 입은 뉴욕을 사랑한다`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이 포스터는 즉시 시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으며 뉴욕 거리 곳곳에 붙여졌다. 포스터가 시민들의 마음을 더 사로잡은 이유는 하트의 왼쪽 아래에 놓인 검게 그을린 자국, 즉 상처 때문이었다. 이는 세계무역센터가 위치한 서남단의 표식이자 테러로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과 고통의 상징이었다. 이 포스터를 디자인한 뉴욕의 토박이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처 입은 심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상처를 극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I ♥ NY은 1975년 뉴욕 주 상무국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벌인 캠페인을 위해 만든 로고다. 당시는 1차 석유파동 직후로 전 세계가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던 때였다. 뉴욕시는 10억 달러 가까운 적자로 파산 위기에 처했고 30만 명에 이르는 실직자와 끊이지 않는 범죄와 파업으로 골머리를 섞이고 있던 때였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고자 뉴욕시가 기획한 캠페인을 위해 글레이저는 I ♥ NY을 디자인했다. 이 로고는 캠페인의 슬로건으로 채택되었고 티셔츠까지 제작하며 기금 마련을 위해 사용되었다.

한시적인 캠페인용 디자인이라고 여겼던 예상을 깨고 I ♥ NY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시민들은 자랑스럽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으며 머그잔 등 각종 기념품에도 로고를 새겨 넣었다. 급기야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까지 I ♥ NY에 열광하며 기념으로 가져갔다. 로고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결국 뉴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단번에 뉴욕을 매력적인 도시로 인식 시켜 주었다. 하나의 로고가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도시 이미지까지 바꾸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뉴욕의 성공에 자극받아 전 세계 다른 도시들도 저마다 브랜드 로고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멋진 결과를 내고 시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남은 로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로고를 만든다고 모두 뉴욕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로고를 어떻게 만드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도시민의 일상 속에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준 사례가 뉴욕의 I ♥ NY이다. 상처 입은 시민들 마음마저 어루만지는 로고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뉴욕의 I ♥ NY은 1975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9·11사태 같은 엄청난 재난 앞에 누구보다 먼저 시민을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는 디자인이 된 것이다. 지금 대전시도 새로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15년간 사용하던 슬로건을 버리고 새로운 로고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에 시민 공모를 통해 새 브랜드 슬로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슬로건은 우리말 표기가 가능하고 지역의 사투리가 반영된 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디자인이 탄생하길 바라본다. 대부분의 도시 브랜드들이 영문 일색인 것에 비하면 대전시 슬로건이 우리말 표기까지 가능한 안으로 결정되었다는 건 특기할 일이다. 더구나 사투리 어감까지 반영한 브랜드 슬로건은 신선한 결정이다. 그 선택에 담긴 뜻을 살려서 모쪼록 오래도록 시민의 마음에 남을 로고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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