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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흑사병

2020-03-27기사 편집 2020-03-27 07:05:55      이용민 기자 min54659304@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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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黑死病)은 말 그대로 몸이 검게 변하면서 죽는 병이다. 외국에서는 '페스트'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병 사례를 찾아볼 수 없어 생소할 수 있지만 천연두, 인플루엔자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3대장 중 하나다. 현재까지 발견된 전염병 중 발병 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지금도 24시간 이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다. 항생제가 없었던 중세 시대에는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했다.

흑사병은 세균성 질환이지만 바이러스성인 코로나19와 여러모로 닮았다. 잠복기는 3-5일이고 오한·발열·두통·전신 무력감 등 증상에 이어 호흡 곤란·기침·가래·흉통 등을 겪게 된다. 중세유럽 흑사병의 대유행 시기는 코로나19 사태를 직면한 우리에게 몇가지 시사점을 준다.

1347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4년만에 2000만-30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처럼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지중해 반도국가 이탈리아가 당시에도 전파의 중심지였다. 치울 사람이 없어 길거리에는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시체를 운반할 수레가 부족할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다. 봉건제는 무너졌다. 통치자와 성직자들마저 감염돼 권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자 희생양이 필요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 이전에도 이렇게 일어났다. 이번에는 동양인으로 타겟이 바뀌어 혐오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당시 인구의 약 30%를 잃게 된 유럽은 100년 동안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긴 암흑기를 견뎌내면 또다른 세상이 열린다. 흑사병 이후 유럽은 위생 관념이 크게 높아졌다. 인쇄술같은 신 기술들도 속속 등장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코로나19에 맞서는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사라졌던 병이라 여겼던 흑사병이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덮치면서 10개월 동안 사람들이 겪는 사투를 묘사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돼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강한 연대의식과 휴머니즘만이 역병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용민 세종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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