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한밭춘추] 선글라스를 낀 피아니스트

2020-03-06기사 편집 2020-03-06 07:56:37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박상희 피아니스트

이상하게 겨울이 겨울 같지 않게 느껴지더라니, 봄을 맞는 것도 사치스러워졌다. 여느 때 같으면 가장 설레고 생동해야 할 3월을 기이하게 맞이하게 되었다. 자연은 본연의 리듬에 충실하게 움을 틔우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2월 말에 중국 태생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캐나다에서 독주회를 앞두고 밴쿠버 공항에 한 시간 이상 강제 억류되는 사건이 있었다.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이슈가 한창일 때였다. 세계적인 위상을 누리고 있는 그녀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동양인이었나보다. 대략 한시간 동안 강도 높은 질문에 굴욕과 심한 괴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가까스로 풀려난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고민 끝에 무대 위에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했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것을 두고 관심을 끌기 위한 지나친 행동이었다고 비평했다.

예상치 못했던 이 사건으로 인해 연주자로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기에 공연을 취소할 이유는 충분했다. 가까스로 공항을 빠져나와 공연 시각까지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공연을 믿고 찾아와 준 관객들을 위해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으로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의 은사님, 팬들을 생각했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연주자라 할지라도 눈앞이 어두운 채로 연주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공연에 애써준 수많은 관계자와 기획자, 스태프, 관중들, 그리고 그날의 무대가 가졌을 가치와 무게를 잘 알고 있기에 공연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그 시각, 그 장소여야 했을 그날의 연주, 공연이라는 특수성이 참 얄궂다. 그녀의 연주는 그녀의 결심만큼이나 강단있고 호기로웠다.

현재 예술 분야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공연이 생업인 사람들의 시름과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타격이 크다. 다음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움직임도 보인다. 온라인으로 연주를 들려주거나 연극을 실황 중계를 내보내는 등 어쩌면 새로운 방식의 공연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