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지난달 초 우리는 더없이 기쁜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경험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을 맛봤던 것이다. 그의 수상 소감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며 상징적인 아포리즘으로 떠올랐다. 노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했던 말을 인용한 이 표현은 세계적 거장과 젊은 감독을 동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디자인을 가르치면서 창의성에 대해 강조하는 필자에겐 이 말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심하는 입장이라 더욱 그랬다. 개인적인 것이 곧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은, 남의 것을 좇지 않고 나 자신에 집중할 때 고유한 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때 창의성에 관해 가르치면서 현실과 거리가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란 용어 자체가 외래어이다 보니 학생들도 `내 이야기`가 아닌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인식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그런 방식으로 디자인을 배운 학생들은 `지금 여기`엔 새로울 것이 없고 창의적인 것이 나올 리 없다고 여길 수 있다. 졸업 후 이곳에 남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인재가 남지 않은 지역은 디자인을 수도권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면 지역은 점점 더 질 좋은 디자인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민 끝에 수업 내용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곳에서 우리 문제를 중심에 두고 풀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실험이 원도심 리서치 프로젝트다.

원도심은 시간이 축적되어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켜를 이루는 장소다. 처음엔 학교 주변을 탐색하면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현장을 샅샅이 살피며 이야기를 건져왔다. 본인들이 자라고 공부한 곳이니 잘 안다고 여겼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미처 몰랐다고 했다. 그들이 채집해온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이 작업이 차츰 외부로 알려지자 원도심에서 60년을 이어가는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원도심을 연구해 전시를 열자는 것이다. 이때 붙여진 프로젝트 명이 `오! 대전`이다.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1.1㎞ 거리에 원을 그리며 붙인 이름이다.

평생 동안 원도심을 지킨 상인들을 만나고 1970-80년대 사람이 북적이던 원도심을 기억하는 시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의실에만 있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제 학생들에게 원도심은 쇠락하고 낡은 동네가 아니라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장소였다. 발견의 기쁨과 만남의 즐거움, 이야기의 고유성을 일깨워주는 터전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해마다 이어져 올해로 5주년이 된다. 그사이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답은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여기던 아이들이 이 도시에 남아 디자인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어느 분야든 새로움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기존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나만의 해석을 더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비로소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남들이 지니지 못한 개인적인 것들이 분명 차별화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을 빌지 않더라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되려면 개별적인 경험이 이루어지는 배경 또한 중요하다. 짧은 기간에 건설되어 어디를 가도 비슷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획일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는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에게 원도심은 고유한 경험이 가능한 특별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곳을 더 깊이 탐색하고 채집하여 창의성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이 많이 탄생하길 바라며 학생들과 `오! 대전` 5주년 준비에 집중해 봐야 겠다.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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