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엘링 카게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176쪽/ 2만 2000원

"우리는 왜 걷는가? 우리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해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답을 가지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나란히 걷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걷기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신발을 신고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고 나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한 발을 다른 한 발 앞에 두는 것이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점이다.-엘링 카게, 본문중"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속도의 시대. 우리는 가능한 한 자주 그리고 오래 앉아있을 것을 요구받는다. 앉아서 많은 것을 생산하고, 또 소비하도록 세상은 설계돼 왔다. 우리는 더 이상 길을 잃을 기회가 없다. 방황하고 탐험하는 기억에서 멀어진 일상은 가장 쉽고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들로 채워진다. 쉽고 빠르게 이룬 성취가 반복되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느리게 걷기`처럼 삶을 조금 불편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신간 에세이가 출간됐다. 세계 최초로 아무런 장비 없이 걸어서 지구 3극점(1990년 북극점, 1993년 남극점, 1994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탐험가 엘링 카게의 `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다.

저자는 "걸어서 등반하지 않고 차나 헬리콥터 안에 앉아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발밑의 땅을 느끼며 걷기에 온 힘을 쏟고 바람, 냄새, 날씨, 빛의 변화를 경험했을 때 나라는 존재와 내가 발 딛고 선 주변 환경을 보다 실제적이고 세밀하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요구와 속도에서 벗어나 `걷는 존재`, `탐험가`로서의 나를 만나는 시간은 200만 년에 거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온 본능에 충실한 삶, 그 순수한 기쁨과 완벽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가정이나 직장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아우르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기적 속에 우리의 생각 역시 속박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깊이 있는 사색이 가능해진다.

그는 걸어서 이룩한 눈부신 성취를 회고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부터 출근길의 계단 오르기, 집 앞 정원 산책 등 일상 걷기의 풍경 속에서 건져 올린 `걷기`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한다. 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두 다리로 곧게 선 순간부터 그 후예가 달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기까지,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본능`으로써의 `걷기`에 대해 잔잔하고 담백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한 발을 다른 한 발 앞에 두는 이 단순하고도 보편적인 행위에 온 신경을 집중해보자. `지금, 여기`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시작되는 한 걸음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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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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