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 독일 베를린 장벽 기념물이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내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다고 한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 기증받아 잠깐 전시됐을 뿐 27년 동안이나 흉물로 방치되었다니 대전시의 보존대책을 나무라지 않을 수가 없다. 기증받아 전시할 땐 분단국가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국민적 관심을 끌었을텐데 지금까지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건 시의 책임이 크다.

베를린 장벽은 장장 154km에 이르는 2.6톤의 단위석을 3.6m 높이로 쌓아 동독 주민들의 이탈을 막은 철의 장막이다. 구 소련의 붕괴에 이어 독일 통일이 추진되면서 1989년 해머와 곡괭이를 든 시민들의 의해 해체된 독일의 역사적 유물이다. 장벽이 해체된 후 4년 후에 치러진 대전엑스포에 일곱 덩어리의 잔해물(장벽)을 들여와 전시에 나섰지만 엑스포 폐막과 함께 베를린 장벽 기념물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낙서로 훼손되는 등 사실상 방치돼 홀대받고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베를린 장벽 기념물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도 찾을 수 없다. 베를린 장벽 일부를 4·3 평화공원에 전시한 제주시나 2년여 끝에 장벽 5개를 기증받아 베를린 장벽 평화공원을 조성한 의정부시와는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그렇다. 장벽 기념물을 건설현장에서나 볼 법한 시멘트 덩어리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시의 무책임 행정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

대전에 있는 장벽 기념물은 그래도 당시 들여온 대로 형태가 유지돼 다행으로 여겨진다. 거기다 기념물이 많은 것도 관광, 체험 자산으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대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다는 얘기다. 올해는 6·25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냉전의 흔적과 전쟁의 유산을 덧입혀 전시, 스토리텔링화 해 문화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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