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미국)에서는 200만 달러(24억 원) 이상을 상속받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상속세를 내야만 합니다. 혹시 이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10명의 사람들 중 단 1명만이 상속세에 반대한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중 사망세를 내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이제 10명 중 단 1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상속세 부과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지금까지 한 평생 국가에 꼬박꼬박 낸 세금이 얼만데, 죽는 것도 억울한데, 국가가 죽음에 세금을 매기려고 하다니….

실화를 토대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했던 딕 체니의 삶과 정치를 그린 아담 맥케이 감독의 2018년작 바이스(Vice)는 미국의 정치가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은 미끼다. 체니는 가끔 루어(lure) 낚시를 한다. 이 때 사용하는 미끼는, 루어라는 말의 의미처럼, 물고기를 강렬하게 유혹할 수 있는 가짜 미끼다. 먹을 수도 없는 것으로 물고기를 유혹하기 위해서 가짜 미끼는 진짜 미끼보다 더 화려하다. 하지만 화려함에 매혹당하는 순간 물고기는 가짜 미끼를 덥썩 물고 마는 것이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낚기 위해서…. 물고기들이 가짜 미끼에 혹할 수 있어야 미끼를 물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진짜보다 더 매혹적인 미끼가 필요하다. 매혹적이라면,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미끼를 기꺼이 물고, 심지어는 가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영화 바이스에 등장하는 미끼 중 하나는 프레임이라는 미끼다. 실제로는 동일한 대상이나 내용임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그 대상이나 내용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프레임 효과라고 한다. 어떤 프레임, 즉 어떤 준거 틀로 세상을 보게 만드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은 달라진다.

상속세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 세금은 재화를 공짜로 획득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것처럼 보인다. 재산을 상속 받은 사람에 방점이 찍힌다. 반면, 사망세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 세금은 사망했으니 내야 하는 세금이라는 인상을 준다. 죽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동일한 세금일지라도, 상속세라는 프레임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내야 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망세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지독한 세금 정책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프레임이 나쁜 것은 아니다. 프레임은 여론 조작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설득의 기술이기도 하고, 가치관과 비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봐야 할지를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그래서 세상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준다. 기후변화 또는 지구 온난화라는 프레임 덕분에 우리는 그전에는 무심코 사용했던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프레임을 던지는 행위다. 독재는 단 하나의 프레임을 던져주고, 그것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는 다양한 프레임과의 만남을 허락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 앞에 던져진 다양한 프레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어떤 프레임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다. 최소한 가짜 미끼를 물지는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매혹적인 미끼가 많을수록 선택은 어려워진다. 선택이 어려울수록 까다롭게 따져보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노력 없이는 가짜 미끼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구성원 개개인이 가짜 미끼를 가려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정치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는 혼자 알아서 잘 크는 나무가 아니다. 까다롭고 끈질긴 시민이 끝도 없이 신경을 써줘야 비로서 자라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좋은 정치는 좋은 정치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고 끈질긴 시민들이 가꾸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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