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교실과 행복한 학교의 설렘을 기대하며

유미선 증명사진
유미선 증명사진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느라 바빠진 계절이다. 보름 즈음에 한 해 농사를 준비하던 선조들처럼 방학인 이 시기에 아이들이 누릴 즐거운 수업과 행복한 학교를 위해 준비를 한다.

몇 해 전부터 분주한 이 계절에 작은 설렘이 하나 생겼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오래전 졸업했던 교단에 첫발을 딛는 신규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이다. 신규선생님들을 보면 자연스레 초임 시절이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선생님이 돼 부임한 첫 발령지는 육지와 좁은 길로 가늘게 연결돼 있던 경기도 서해안의 작은 학교였다. 6학급에 병설유치원이 있어서 교장·교감선생님까지 모두 9명의 교원이 근무하던 소규모 학교로 재미있는 것은 선생님들의 고향이다. 정년을 앞둔 교장선생님은 함경도 실향민이었고, 교감선생님은 전라도 남녘에서, 교무부장님은 강원도에서, 같은 해 경상도에서 부임하신 옆 반 선생님과 낚시를 즐기셨던 충청도 선생님 등 회의시간이면 제주도 방언을 제외하고 전국의 사투리를 듣던 그 시절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오는 날 오후 학생들이 모두 일찍 하교한 텅 빈 학교에서 부지런히 업무처리를 하고 있으면 교무부장님이 현관 계단실로 나가 리코더를 불어줬다. 500원짜리 플라스틱 리코더의 소리는 일하던 선생님들을 불러 모았고, 그 어떤 클래식 악기보다 우리를 환호하게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감동해 부장님께 리코더를 배우기도 했다.

바닷가라 학생들을 데리고 교문 앞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도로를 건너면 갈 수 있는 넓은 백사장을 두고도 교실에서 작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고, 봉급날이면 천 원짜리 지폐와 백 원짜리 동전까지 개수를 맞추어 농협에서 가져와 봉투에 나누어 넣는 일까지 선생님들이 하던 힘겨운 시절이기에 교육에 대해 유독 고민이 많던 때이기도 했다. 운동회를 준비하면서 막내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각 학년 무용, 6개 학년의 화관무와 후프, 곤봉체조, 포크댄스, 꼭두각시, 천을 들고 하는 마스게임, 그리고 전체가 함께 하는 맨손체조를 방학 동안 만들고, 테이프가 두 개 들어가는 레코더를 이용해 연습용과 행진곡 음악이 연달아 나오는 운동회용 음악테이프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런 준비과정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교사로 첫걸음을 내딛는 내 곁에 계셨던 선배 선생님들 덕이었다. 진지하게 회의를 하다가도 팔도의 사투리가 웃음으로 번졌던 따뜻한 교무실과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무용에 쓸 천을 골라주고, 살아서 펄떡거리는 생새우를 손에 쥐고 와 깜짝 놀라게도 하며, 간혹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서서 엄한 가르침으로 신규교사를 이끌며 웃음을 짓거나 안타까워 했을 선배 선생님의 모습 위로 내 모습을 겹쳐본다.

동료로 선배로 새로 만날 신규 선생님과 함께 신학기 떨리는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의 설렘을 기대하며 오늘도 신학기 준비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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