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남서울대 교수, (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남서울대 교수, (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지난 주말이 설이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경자년(庚子年)이 시작됐다. 새해 벽두부터 도전적인 제목의 글을 올리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축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을 논하고자 한다. 건축이란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위한 지원환경으로서 적정한 구조, 재료 및 설비를 합리적이고 안전한 형식을 통해 구현하는 기술적 차원과 함께 자기 인식의 실존적 대상으로서 미적 감흥을 위한 조형 의지를 통해 표현되는 미적 차원에서 정의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단순한 건조 기술을 구사해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구축물인 건물(building)과는 구분된다. 그런데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재건축은 정주환경(定住環境) 개선이라는 본질적 차원보다는 재(財)테크라는 차원에서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는 `집은 거주하기 위한 기계`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거주할 수 있는 부동산`일 뿐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경관디자인을 통해 치장된 외관, 주차장 지하화에 따라 안전성이 강화된 아름다운 조경공간, 각종 편의시설로 특화된 공용공간 등 높아진 집합주거 수준을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고도성장 사회에서 양적 공급에 치중했던 과거의 아파트들을 대신하는 많은 재건축 아파트들 또한 외견상으로는 건축적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는 대부분 재화가치로 환산될 주거용 건물들이라고 밖에는 달리 인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아파트 재건축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많은 수의 아파트 재건축이 기존 정주환경에 대한 사회·문화적으로 충분한 고려가 없이 이뤄지고 있다. 용적율과 높이 제한 등 면적 확대 관련 법적 사항에 대한 고려가 최우선이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단지는 스스로 만든 해당 단지 주민들만의 게토(Ghetto)로 단지 바깥의 도시 생태계와 구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같은 단지에서조차 임대 전용 주거동 구역과 일반분양 주거동 구역을 구분하는 사례도 있다. 셋째 최근 아파트 단위세대 내부 공간은 주거 수요자들의 최신 주(住) 요구들을 명확하게 담아내고 있는 반면 고층화와 발코니 확장 등 영향으로 외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미세먼지 문제 대두 등으로 외피는 한층 더 기밀화되기만 하고 있으며 현관밖 근린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지난해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 공동 총감독 프란시스코 사닌(Franisco Sanin)은 `왜 집합도시(Collective City)인가`라는 주제 강연에서 집합도시는 돈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섬유질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주변 시장과 골목길을 없애고 건물만 살아남을 수는 없으며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 등 수많은 도시들이 도심의 역사, 뿌리, 기억을 다 지우고 무너뜨린 후 뒤늦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재건축 아파트들은 비록 건물에 불과했지만 시간 경과의 따라 나름의 사회·문화적 생태계와 역사성 구축을 통해 부족한 건축성을 보완해 왔던 기존 정주환경을 모두 부정하는 데서 계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낡았다고 해서 기억에서 다 지워도 좋은 것은 아니다. 또한 단지 차원에서 기존 소유자들의 편익만 도모하는 폐쇄적 사고 역시 극복해야 한다. 부족한 접지성과 근린성을 보완할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궁극적으로 사회문화적 존재로서의 건축이 가지는 공공성이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재건축에서 공공성 회복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도시건축으로서의 가치를 올바르게 구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욱(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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