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수염은 한자어 수(鬚)와 염(髥)이 합쳐진 단어이다. 여기서 수(鬚)는 턱수염, 염(髥)은 구레나룻이다. 일반적으로 수염이라 하면 콧수염을 포함해서 얼굴 부위에 있으면서 외부로 돌출돼 자란 체모를 통칭한다.

수염이 나는 부위와 성긴 정도는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우선 결정되고, 남성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유전적으로 수염이 많은 체질이라도 일단 남성 호르몬이 충분히 있어야 수염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므로 수염은 남성에서 사춘기 이후가 돼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여성도 부신에서 약간의 남성호르몬 유도체가 분비되는데, 부신 선종 등의 질환에 의해 그 분비량이 증가되는 경우 더러 수염이 수북하게 자라기도 한다.

호르몬에 대한 지식이 없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길고 풍성한 수염은 남성성의 상징이었고, 성인 남성은 수염 기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화권에 따라 수염을 깨끗이 깎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시기가 로마시대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개화기 이전에는 수염 기르기가 일상적이었지만 현재는 특별한 경우가 됐다. 필자는 수염이 많이 자라는 체질이다. 고교 시절부터 일주일에 한번은 수염을 밀어야 했고 성인 이후에는 매일 면도를 해야 단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사실 말이 쉽지 매일 수염을 깎기란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염을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귀찮은 일 하나가 줄어 들 뿐 아니라,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시간도 절약될 것 같았다.

또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Simple life`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면도에 소요되는 소모품 비용 절약은 덤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수염을 길러 보기로. 이래저래 수염을 기른 지 이제 석 달이 지났다.

물론 그 동안 수염을 전혀 깎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랬다간 산적 같은 몰골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적절한 수준의 관리는 해야 했다.

사실 관리라고 해도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불규칙하게 자라나오는 수염을 좀 다듬어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매일 깎을 때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절약됐다.

수염을 기르면서 얻은 또 다른 소득은 내 본래의 타고난 모습을 조금 더 실제에 가깝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수염을 기른 모습이 자리 잡은 요즘 외래 진료 때 정기적으로 뵙는 환자분들로부터 `멋지게 수염 기르셨네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럴 때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답례하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수염을 깎으라고 하는 분들도 계셨다. 기르기 이전의 깔끔한 모습이 더 어울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모두가 진정성 있는 도움의 말씀이다. 가슴 깊이 담아 두었다. 여자들이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흔히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한 순간에 깨끗하게 수염을 밀고 스타일을 바꿔볼 수 있겠다. 손쉽게 젊어 보일 수 있는 방법 하나를 확보해 놓은 셈이다.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요즘 예년에 비해 유난히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매서운 찬 공기를 맞으면서 수염이 어느 정도 방한 효과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같은 얼굴 면이지만 수염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사이에 느껴지는 한기가 다르다. 가을 내 기른 수염에 이런 숨겨진 효용이 있을 줄이야.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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