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보전산실 공학박사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보전산실 공학박사
이병헌은 헐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영화배우지만 영어이름이 없다고 한다. 어떤 기자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관객들이 내 이름 이병헌을 영화에서 보면 더 좋을 거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름 그대로 불리는 것이 기분도 좋고, 외국 배우들이 힘겹게 발음하면서 불러줄 때 더 뿌듯하다고 한다.

반대로 질문해 보자. 영어이름이 꼭 필요할까? 유독 영어를 배울 때는 영어이름을 만들라고 권유하는 강사들이 있다. 왜일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창씨개명을 당했다. 그때는 울면서 성과 이름을 바꿨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스스로 바꾸고 있다. 문화적으로 접근해 오니 별 거부감 없이 바꾸고 있다.

성명·초명·아명·관명·예명·자·휘·호·시호·별호·택호·당호 등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이름이 있다. 선조들이 호칭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호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동양 문화권에서 쓰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허물 없이 부르기 위해서 호를 지어 부르며 존칭을 생략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었지만, 성장해 스스로 이름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전통 때문인지 별 거부감 없이 영어식 이름을 만들고, 존칭을 붙이지 않으려 했던 호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화적 자존심이 있다면 호를 만들 때 굳이 영어식으로 만들지 않고 한국식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비단 이름짓기에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창씨개명 뿐 아니라 학교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못 하게 해서 우리 말글이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는지 다시 우리 말글이 사라진 수업을 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대학에서 영어수업을 한다. 한국어로 강의를 한다고 해도 영어원서로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를 만들 능력이 부족한 어떤 나라에서는 중학교부터 영어 원서로 과학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이 한국어로 교과서를 만들 능력이 없는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단어를 만드는 능력을 줄어들게 한다. 수많은 전문용어들이 있는데, 이들은 급히 필요하다는 이유로 외래어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자체개발한 성과물에 영어이름을 붙여주고 있는 경우도 많다. 영어이름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사대주의가 우리에게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서양서적을 엄청나게 번역했다. 그 전통이 남아서 지금도 서양 쪽에서 새로 책이 나오면 일주일 안에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능력이 발달하다 보니 일본은 전문용어를 일본식으로 만들어낸다. 일본에서 만든 용어가 한국으로 넘어와 전문용어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만 2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내는 저력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영어를 못해도 일본어만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 요소라 생각한다.

프랑스는 언어총국을 두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자국어로 편리한 언어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친다. 신조어 전문위원회와 신조어 총괄위원회가 있어서 새로운 어휘를 만들고, 한림원에서 이를 검토한다.

한국에서도 일주일 만에 책을 번역할 수 있는 국립번역원 같은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전문용어로 인해 만들어진 진입장벽을 완화해 융합연구가 조금 더 수월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모국어만 가지고도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단순히 노벨상을 타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상시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보전산실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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