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소설가
김종광 소설가
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

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도대체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시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

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의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

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

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

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 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

김종광 소설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