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이 대전시 기획조정실장
김주이 대전시 기획조정실장
성인지 예산이 뭐예요? 이 물음에 열에 한 두 명은 글쎄~하며 끝을 흐리기 십상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간간히 들어봐서 아주 생소한 건 아닌데 딱 이거다. 명쾌한 답변을 내놓기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산`이란 단어에는 꽤 익숙해져 있고 그만큼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다. 영어로 budget 이라 부르는 `예산`의 어원은 돈주머니라는 뜻인 고대 프랑스 말의 bougette(가죽여행가방)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gender budget이라 하는 `성인지 예산`은 무엇일까? 예산은 예산인데 뭔가 좀 색다른 예산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적으로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로 규정하고 있다. 즉 `예산`이 하나의 회계년도의 세입과 세출에 관한 예정계획서라고 한다면, `성인지 예산`은 전체 `예산` 중 남녀 별로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성차별 없이 평등하게 혜택을 누리도록 조정, 배분하는 예산인 것이다.

대전시는 며칠 전 2020년 성인지 예산안을 작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양성평등정책사업(64개), 성별영향평가사업(86개), 특화사업(12개) 등 총 162개 사업에 6700억 원 가량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한 규모다.

매년 예산서를 작성하면서 대부분 사업부서는 `이 사업은 성인지 예산 대상이 아니다` 거부하고, 총괄부서는 `그 사업은 성별 수혜분석이 가능한 사업` 이라며 설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후 몇 번의 예산서 작성 교육기회 제공과 전문 컨설턴트의 조언이 부지런히 오가는 동안 담당자의 성인지적 관점이 키워지고, 예산서 작성이 점점 매끄러워지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성인지 예산서가 작성되는 것이니, 162건의 예산은 그야말로 사업부서와 총괄부서간 성평등 협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2020년 성인지 예산서를 살펴보다 조금 의아한 사업이 눈에 띄어 소개하려 한다. 성인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인데도 제목을 보는 순간 `이런 사업이 성인지 예산 사업 맞나? 성별수혜분석이 가능하다고?` 고개가 갸웃했던 사업, `여권발급 운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업은 여성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 증가 추세에 주목해 `안전에 취약한 여성, 아동을 배려한 여행안전에 대한 매뉴얼 보급`을 성과목표로 설정했다.

2017년 1월 8일 보도 기사에 따르면 전체 1인 여행객 중 여성 52.3%, 남성 47.1%로 여성이 높게 나타난 바, 여성 혼자 여행하는 경우를 포함해 해외여행 중 자녀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범죄에 노출될 때 등 긴급상황 발생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안내 및 지원하자는 취지다. 여기에 `노약자 여권 무료배송 서비스`, `임산부 등 우선 창구 운영` 이 성과목표로 보태져 비로소 `여권발급 운영`이라는 일반예산 사업이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밖에도 심정지 발생빈도가 주로 60대 이상 남성에게 발생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범시민 심폐소생술교육 확대`사업에 공감이 갔다. 배우자인 여성 노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익히게 해 남성 배우자의 심정지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2020년 성과목표를 `여성노인층 심폐소생술 교육 참여자 수 50명`으로 신규 설정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노인여성도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모두에게 심폐소생술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 시민의 응급처치 능력을 향상시키고 인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참신한 지표로서 주목할 만한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성인지예산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시민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여성,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안전소외 계층에 손잡아 주고, 때론 상대적 불균형으로 열외에 있는 남성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일상 속에 스며있는 예산이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알듯 말듯 답변이 애매해서 불편했던 물음. `성인지 예산이 뭐예요?` 이제부터는 그 물음에 기꺼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주이 대전시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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