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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건축] 격이 있는 도시, 격이 있는 건축, 격이 있는 공간

2019-11-27기사 편집 2019-11-27 08: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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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아름다운 건축'이란 제목의 칼럼 집필을 의뢰받고 '아름다운 건축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이런저런 답을 찾아보다가 '격이 있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름 '격이 있는 건축'이 갖추어야 할 품성에 대해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건축에 있어서 '격'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우리가 가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도시, 건축, 공간의 차원에서 각각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행 좀 다녀봤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본 도시 중에 격이 있는 도시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유럽의 도시들을 든다. 그 도시들의 대부분은 역사가 오래된 곳들이지만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어 볼 것이 많다고 격이 있다 할 수는 없다. 역사가 그 도시 생활의 한 부분으로 살아 있어야 하며,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들이 잘 갖추어지고, 공동체로서의 시민 의식이 유지되는 등의 여러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도시가 격이 있는 도시로 인식되는 것 같다.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원제 : Places For The People)'에서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논증한 바를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사람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많고 공동체적 문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이 많은 도시가 격이 있는 도시가 아닌가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 창신동 봉제마을은 새로운 관점의 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외형적으로 노후됐고, 물리적 인프라스트럭처는 충분하지 않으나, 오랜 세월동안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발전해온 지역 밀착형 봉제 산업 생태계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곳이라 할 수 있다. 또 지역 공동체의 능동적인 참여로, 비록 아직 섣부른 성공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눈 여겨 볼만 한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본보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서울의 새로운 '힙 스페이스(Hip Space)'로 거듭난 서울 종로 익선동 일곽은 앞서 서울의 '힙 스페이스'로 떠올랐다 최근 쇠락하고 있는 서울 용산 경리단길과 달리 일제 시기 서울 시가에 일본식 가옥의 확산에 대항해 소위 '조선집'이라는 근대 한옥을 집중적으로 보급하였던 정세권의 숨결이 스며 있는 지역으로 바둑판 모양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격이 있는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내게 떠오르는 최근 대표적인 건축물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빌딩'이다. 서울 용산역 건너편 구 본사 사옥의 자리에 신축한 이 업무용 시설은 여러모로 격이 있는 건축이란 이렇게 기획되어, 이렇게 지어지고, 이렇게 쓰이는 것이라는 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박스(Box)형의 형태는 일견, 흔하게 볼 수 있는 업무용 고층빌딩의 형태로도 읽혀지지만 그 동기는 구 본사 사옥이 갖고 있었던 이미지의 역사적 계승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이며, 조선 백자 달 항아리의 개념적 아름다움에 기반한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서도, 마치 우리 전통 정원의 방지(方池처)처럼 원형의 안내 키오스크가 한 켠에 있는 방형(方形)으로 디자인된 1층의 아트리움이 역시 비워져 있는 상태에서 빛과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적 행위들로 채워지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의 우리나라 1호점, 성수점은 상업공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최신의 '힙 스페이스'로 거듭나고 있지만 원래 성수동은 서울에서 건축적으로 특색이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블루보틀 성수점은 그냥 그런 소규모 업무용 건물을 외형적으로는 거의 변형하지 않고, 깨끗이 정비만 해 사용하고 있다. 대대적인 간판도 없다. 물론 평범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펼쳐지는 공간이 반전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1층에 커피 로스터 공간을 두어 '여기는 커피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아래로 일부 바닥을 들어내어 트여진 사이로 보이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과 마시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블루보틀의 이상과 '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늦가을의 마지막인 이번 주말에는 이러한 곳들을 들러보며 격이 있는 도시, 격이 있는 건축, 격이 있는 공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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