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바야흐로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드는 늦은 가을이다. 새벽 찬 공기에 어느새 겨울이 문턱에 와 있음을 느낀다. 산야를 물들였던 단풍이 늦가을 비바람에 낙엽으로 쌓이는 스산한 계절이다.

예로부터 단풍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늦가을의 단풍은 대자연이 주는 멋진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필자도 올해는 오대산부터 가야산, 북한산, 수락산 그리고 지난 주 남산까지 틈나는 대로 산행을 즐기며, 눈앞에 펼쳐지는 단풍을 마음껏 즐겼다.

일반적으로 하루 최저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단풍이 시작된다고 한다. 나뭇잎에 포함된 엽록소로 인해 잎이 녹색을 띄는데, 기온 저하에 의해 엽록소의 자가분해가 촉발되면서 나뭇잎 색이 변하게 된다.

엽록소가 점차 사라지면서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져 있던 잎 자체의 고유한 색이 드러난다. 보통은 시든 낙엽에서 보이는 것처럼 노란색과 옅은 초록색이 섞인 모습이다.

나무 품종에 따라 엽록소 분해 과정에서 안토시안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갈색 혹은 붉은색 계열의 색을 띠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단풍이 만들어진다.

단풍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낙엽으로 되는 과정은 나무 입장에서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겨울철 일조량과 기온이 떨어지는 시절을 무사히 나기 위해 유지에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과감히 떼어내는 것이다.

낙엽(落葉)에 더해 잔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낙지(落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진화의 결과이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기 위한 나름의 힘겨운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단풍이 진하고 붉을수록 우리는 그 황홀한 풍광에 매료된다.

단풍의 붉은 정도는 안토시안 색소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데, 단시간에 많이 생성될수록 보다 진하고 선명한 붉은색 단풍이 만들어진다.

이는 품종 자체의 특성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을에 비가 적게 와 가뭄이 이어지는 환경에서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엽록소의 파괴 속도가 빨라져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무에게 오는 위기 상황이 크고 긴급 할수록 멋진 단풍이 드는 것이다. 자가 분해된 엽록소의 주요 성분들은 뿌리로 이동되어 보관되었다가 이듬해 새 잎을 만드는데 필요한 엽록소 합성의 원료로 다시 쓰이게 된다.

나무가 가진 가용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일종의 리사이클링(Recycling)이다. 늦가을 산야를 곱게 물들이는 단풍 속에 이렇듯 철저한 계산에 의한 생존 전략이 숨어있다.

낙엽도 나무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바닥에 쌓인 낙엽은 찬 공기의 영향을 줄여 준다. 겨울철 건조한 환경에서 토양 내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한다.

또한 낙엽 아래 서식하는 여러 미생물과 벌레들의 생활 터전이 되어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단풍, 그리고 낙엽은 한 겨울의 힘든 시절을 견디기 위한 나무의 구조 조정이다.

따뜻한 봄에 다시 한 번 푸르름을 피우기 위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이다.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참아내는 현명한 선택이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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