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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낙엽을 쓸며

2019-11-14기사 편집 2019-11-14 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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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혜범 스님
불가의 화두 중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무(無)라,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 집착이 없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내가 머무는 암자는 산중에 있다. 암자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그 길옆은 바로 산이고 숲이다. 벚나무도 있고 뽕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고 매화도 있다. 봄이면 희망의 싹을 돋우고 틔워 초록의 꿈을 꾸게 하곤 한다.

나는 그 길을 오가면서 '너희들은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가'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무들은 곱디고운 잎으로, 꽃으로, 맑고 밝게 웃을 뿐이다. 그 환한 웃음은 여름이 되면 푸른 꿈, 녹음으로 짙어져 그 사랑을 전하곤 한다. 그 봄의 만남과 나눔은 늘 신비롭기만 하다.

그렇게 봄은 가고 여름도 가고 며칠 전에는 마침내 서리가 내렸다. 산중은 평지보다 추위가 먼저 찾아온다. 살짝 살얼음까지 얼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알록달록 단풍졌던 산은 푸르죽죽 거무죽죽 변했다. 오그라들고 생기를 잊은 나뭇잎들을 보며 나는 눈을 씀벅거렸다. 한 잎 두 잎 낙엽이 떨어진지는 얼마 전부터다. 그런데 바람이 불자 우수수 낙엽이 지는 것이다. 오색 단풍진 산이 부르르 떤다고나 할까. 거기다 가을비까지 내렸던 것이다.

엄지손톱 만하던 새싹들이 단풍잎 되더니 어느새 낙엽이 되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가볍게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보고 섰다. 마치 가을이 내게 주는 시어(詩語) 같기도 하고 보시(布施)같기도 하다. 그 햇살 바람과 몸 비비며 찬란하게 나를 맞이했던 존재의 시절들. 한 때 나무의 추억이고, 기쁨이고, 꿈이고, 노래였던 실존의 나뭇잎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는 낙엽을 밟기가 미안해졌다.

그런데 낙엽들이 한 잎 두 잎 길을 덮기 시작했다. 비탈길이기에 낙엽을 쓸지 않으면 암자로 올라오는 차들의 바퀴가 헛돌아 위험하다. 가을이면 두 번 세 번 낙엽 쓸기는 의례하는 행사다. 내 생에 또 한번 맞는 가을, 가을의 전언(傳言)들을 쓰는 것이다.

그 파란만장한 나뭇잎들의 생애를 쓸다 낙엽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순간, '꽃마다 열매 맺는 게 아니고 낙엽마다 책갈피에 끼워지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낙엽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행복한 가을이다. 지난날들을 그리워한들 네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느냐. 이 세상 영원한 것이라고는 없다. 그래 저 언덕 넘어 가야지. 이제 자유하거라. 사색하던 나의 영혼들아. 푸른 잎은 붉은 치마, 방랑길이 멀구나" 나의 말에 홍엽들이 부끄러워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 이별이래요. 안녕, 안녕"

첩첩 산중의 집착과 연민을 쓸어내듯 그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낙엽들을 쓸자니 벌레에 갉아 먹힌 놈들도 있고 골다공증을 앓았는지 구멍이 뻥 뚫린 놈도 있다. 가을에 나무에 버림받고 나에게 까지 쓸려 길 양쪽으로 밀려난 낙엽들이 허허로운지 붉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스님, 한땐 새들도, 벌들도, 나비도 날아와 제 옆에 팔랑거렸어요"

"그래, 잘했다. 수고 많았다. 너희들은 썩어 다시 새순, 새생명으로 태어날 것이야" 괴로움을 떠나 어찌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번뇌를 떠나 어찌 보리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괴로움 없이 즐거움도 없을 것이며 번뇌 없는 보리도를 어디서 구할 것이냐. 살을 태우던 땡볕이 없었다면 어찌 이 가을 황량함을 알 것이고 새싹에서 낙엽이 되어 보지 못하고 어찌 구도자라 할 것인가.

이제 춥고 스산한 겨울이 올 것이다. 눈이 내리고 낙엽들은 얼고 썩을 것이다. 그러면 또 수없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낙엽들이 내게 "무(無)라, 무(無),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거늘 스님은 무엇을 그리 바쁘게 오르내리시는지요"하고 주절거릴 것이다.

혜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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